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1)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31)

정충신이 군의 지휘관들과 지방관들을 모아놓고 간부회의를 소집했는데, 토의 안건이 양곡 배분 문제였다. 곡식을 풀었지만 하부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었다. 배급관이 보고했다.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식량과 의복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하부에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가?”

“대놓고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만....”

하면서 배급관이 눈을 말똥거리며 지벼보고 앉아있는 지방 수령들 눈치를 살피다가 정충신의 귀에 대고 설명했다.

“지방관들의 농간이 큽니다. 저 자들 중 몇놈을 모범적으로 치도곤을 치기 바랍니다. 저 자들 배때지에 다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방 수령들의 사가에서 곡식을 끄집어내 백성들에게 분배했지만 정작 맨 하부에서는 한됫박이 지급되면 다행이었다. 끌어온 양곡을 풀면 집집마다 보리와 밀, 쌀 합해서 두 말 정도는 배급되는데, 한됫박 꼴이 고작인 것이다. 누수 현상이 심한 전달 사고 때문에 양곡을 풀었다고 해도 밑바닥 백성들에게는 목에 기별도 안가는 배급량이었다.

“맨 밑까지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 이 말이렸다?”

“그렇습니다. 관원들이 토호세력과 짜고 하는 일이니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조선 왕조 240년이 다 된 지금, 나라는 부패가 하나의 체질이 되어버렸다. 고질적 부패구조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도층이라는 관원들의 탐학이 심했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어찌 목민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의 근본 원인은 신분 질서가 쪄누른 답답한 관료사회에 있었다. 관료 세계의 권위주의적 군림과 오만이 병폐의 원인이었다. 관료 체계의 신분 질서는 거대한 기득권의 벽을 쌓고, 이를 통해 자리도 세습하면서 변화를 거부한다.

외적의 침략을 당해서도 많게는 사병을 500까지 거느린 사대부들이 정작 자신들의 사병을 내놓지 않는다. 의기가 서린 지방의 양심적 유림들이 의병을 일으키거나 절에서 승병이 일어나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 놓고도 패하면 무한 책임을 물어 목숨을 내놓으라 하고, 이기면 당연한 듯이 그들이 공을 독식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런 것들이 부당하다고 내놓고 말하지도 않는데, 조정은 정충신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여 여차하면 얽어매려고 했다. 중앙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거의 없는 것이 차별의 근거가 된 셈이었다. 그는 늘 그들로부터 음해와 모함의 대상이 되었다.

“전라도 촌 것이 올라와서 그 정도 출세했으면 감지덕지 해야지, 이러다 3정승까지 노리겠다는 것인가? 꿈도 야무지지..."

그를 비호해줄 세력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삶을 고단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패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충신을 걸림돌로 여기고 있었다. 청렴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정충신은 사대부를 살찌게 하는 자들이 바로 지방관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통로를 차단하는 것도 정치를 맑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백성들로부터 수탈한 재화로 출세와 영달의 수단으로 삼는 그 길을 막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지방관들 들으시오. 여러분의 사가에 쌓아둔 양곡은 본디 백성의 것이오. 목민관의 녹봉으로는 그 많은 재산을 쌓아둘 수 없는 것이니, 본관이 재량으로 부하들을 시켜서 백성들에게 분배하도록 했던 것이오. 그런데 밑바닥 하층민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고 있소. 백성들이 여전히 주린 배를 싸안고 죽어가고 있단 말이오."

한 수령이 부당하다는 듯이 맞받았다.

"억울하오이다. 도로 뺘앗은 증거가 있다면 목숨을 내놓겠소이다. 백성들을 착취하지도 않았는데도 우리 것을 빼앗으니 참으로 억울하오이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출세의 도구로 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차제에 정치권을 정화하고 모든 적폐를 걷어내는 계기로 삼기위해 부패 관료를 단속하겠다."

정탐병이 정충신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배급관과 짜고 밤에 몰래 수령들의 창고로 양곡이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배급관과 짜고? 그 자가 누구냐?"

"갑조와 병조의 배급관입니다."

"그자들을 불러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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