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에도 주린 백성과 동고동락한 정통 명가
시조 류차달, 천수레 식량조달 고려 공신
31대 류이주, 풍수명당 구례에 종가 열어
시인 류제양, ‘생활일기’등 보물 보존
초근목피 ‘송쿠죽’, ‘타인능해’ 나눔 계승
사람중심 구조배치 조선 대표 가옥, 운조루
효제·겸애·인본·기록의 정신은 가훈
명산 지리산 노고단 남쪽 형제봉과 왕시루봉 아래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는 섬진강 너머 오봉산을 마주보는 명당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는 그 터에 있는 문화류씨 귀만와종가가 운조루다. 고려조, 조선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명문세족의 품격을 지킨 문화류씨가 구례에 세거한 이야기를 통해 빛나는 종가 인물과 보물을 살펴보고 그 가치를 조명한다.
◇ 고려개국 공신 류차달, 류씨 가문의 시조(始祖)
황해도 구월산 동남쪽 문화지역에 세거하던 호족 류차달은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곤경에 빠진 왕건의 군대에게 수레 천량으로 군량을 조달해 승리를 도운 고려 개국공신이다. 왕건이 수레 車 다다를 達 ‘차달’이란 이름을 내렸고, 그가 문화류씨 가문을 열었다. 고려 4세5경 명문의 18대 손 류익정은 조선태조 이성계로부터 국경 토지 개척의 공을 인정받아 부원군에 오른다. 류익정이 곤산군파의 파조(派祖)다.
◇ 수원화성 건축한 류이주, 구례 길지에 종가 열어
문화류씨 31대 손 류이주(1726~1797)가 구례 토지에 세거하며 ‘운조루(雲鳥樓, 중요민속문화재 8호)’와 귀만와종가를 열었다.문경새재에서 호랑이를 채찍으로 격퇴한 기개를 정조가 알아보고 ‘박호장군’으로 부르며 그를 임용했다. 낙안군수 때 류이주가 예기치 않은 일로 유배된다. 노년을 편히 살 택지를 찾아 토지 오미동에 들었다. 류이주는 수원중군을 맡아 아름다운 수원화성 축조로 정조에게 감동을 주었고, 선치(善治)로 칭송을 받았다.
류이주는 가풍을 담아 집을 지었다. 전라도에서 흔치 않았던 □자 구조, 안과 밖의 크고 작은 사랑채, 길손에게 내주는 24칸 행랑채, 여성의 조망권을 배려한 2층 다락과 창문, 풍수설을 반영한 부엌위치 등 사람중심의 구조배치가 독특하다. 굶는 사람을 배려한 낮은 굴뚝, 노인과 수레가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 돌길 등에서 효제와 인본과 겸애의 선비정신이 설계 당시부터 잘 반영된 건축이다.
◇ 흉년 이겨내는 공동체정신의 상징 ‘타인능해’
종가는 수레로 곡식 실어 백성 먹여살려 개국공신이 된 조상의 고매한 정신적 전통을 계승했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 ’는 굶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종가의 배려로 쌀을 내주는 정신을 상징한다. 쌀 세가마니 용량의 뒤주를 동문에 두어 자판기처럼 손잡이를 밀면 소량의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작은 구멍으로 죽을 끓일 만큼 소량의 쌀이 쏟아지는데 또다른 굶는 이웃을 위해 함부로 욕심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78칸 부자집도 대기근이 오면 식량난을 피할 수 없다. 귀만와종가 음식 중에 ‘송쿠죽, 송쿠밥’이 있다. 소나무껍질과 함께 끓인 죽이 ‘송쿠죽’이다.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흉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껍질을 벗겨오면 거대한 솥단지를 걸어 죽을 쑨다. 종가의 쌀로 부족할 경우 향교에서 차용하기도 했다. 굴뚝을 낮춰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고, 길손에게 행랑채 공간을 내주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눔 정신이 동학농민전쟁·일제침략·한국전쟁·여순사건 등 근·현대 격동기에도 종가를 지켜낸 동력이 되었다.
◇ 류제양의 70년 생활일기, 국가 보물급 기록물
종가의 기록정신이 수많은 자료를 보존했다. 류이주의 고손자 류제양(1846~1922)은 매천 황현과 교유하며 1만 편의 시를 지은 시인이다. 종가의 수많은 이야기는 류제양이 6세부터 70년간 쓴 일기 ‘시언(是言)’과 그의 손자 류형업(1886~1944)의 40여년간 일기 ‘기어(紀語)’를 통해 전해진다. 구한말 조선의 풍습과 근대화 시기 사회변화를 알려주는 보물이지만 일기는 국가로부터 문화재 지정을 받지않은 상태다. 귀만와종가에는 전적·고문서류 352종 811책, 676건 등 기록물과 김정희가 쓴 편액·병풍·그림·글씨·수레바퀴 등 민속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1987년 종가에 강도가 들어 보물 일부를 도난당했다. 종가 유물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과 노모를 남기고 종손 류홍수마저 최근 세상을 떴다. 종가의 후손 류정수씨는 “분수를 알고, 인간을 존중하는 선비정신, 효제정신, 겸애정신을 지켜내고 싶다”며 종가체험캠프와 민박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정현 뉴미디어취재본부장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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