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로 재구성한 총선대첩 광주 동남갑 편

■무협지로 재구성한 총선대첩 <1> 광주 동남갑 편
윤영덕 “실전은 기세”vs 장병완 “예산신공 받아라”
경자년 4월 15일 비무대회 양자 격돌
치열한 각축 승자는 누구…관심 고조
무림정치 신예 돌풍vs중진 관록 내공
 

#승자는 누구일까, 술렁이는 객잔

광주 동남갑 비무대가 열리는 호남성 남문 인근 객잔. 이 곳에는 대회를 보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 든 무인들과 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코로나 전염병 여파로 조용했던 객잔이 간만에 분주해지자 주문을 받는 점소이의 손길도 바빠졌다.

이때였다. 왁자지껄한 객잔 내부를 비집고 단정한 앞머리에 준수한 외모의 한 사내가 불현듯 객잔 중앙 탁자로 올라갔다. 사내는 총선 비무대회가 열릴 때마다 객잔에서 내기를 주도해 짭짤한 재미를 봐온 오 대인이었다.

“자자, 이번 대회 승자는 누가 될 거 같소. 더민주 문파의 신예 윤영덕 협객의 승리를 점친다면 파란색 함에 은자를 넣으시고, 민생 문파 장병완 대협을 응원한다면 녹색함에 은자를 거시오.”

사내의 솔깃한 제안에 객잔 내부에 앉아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탁자 위에는 두 개의 함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갑자기 이마에 녹색 두건을 질끈 동여맨 한 사내가 소리쳤다. 그의 두건에는 ‘장(張)’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써 있었다.

“난 우리 민생 문파 장병완 대협의 승리에 은자 10냥을 걸겠소”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사내들 역시 너도나도 녹색함에 은자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한 무인이 허리춤에 찬 장검을 빼 머리 위로 들어보이며 말했다.

“에헴, 우리 장 대협의 무공은 이미 절정에 오른 상태요, 지난 12년간 3번에 걸친 비무대회에서 승리를 놓친 적이 없지요. 더민주 문파의 세력이 중원 곳곳에 뻗어있지만 장 대협이 다져온 동남갑의 세도 무시할 수 없지요”

그의 옆에 앉은 또다른 무인 한 명 역시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장 대협으로 말할 거 같으면, 예산신공 완성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지요. 강호의 곳간을 관장하는 기획예산부 수장을 지낸 바도 있소. 근자에는 에너지 권법을 수련해 벌써 6성의 경지에 다다랐다 하오”

기세가 오른 녹색 두건 무리들은 왼쪽 주먹을 꽉 쥐고 “장 대협”을 연호했다.

죽립을 눌러쓴 채 객잔 구석자리에서 조용히 술잔을 채우던 한 사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렴풋이 보이는 낯빛은 붉은 홍조를 머금고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장 대협, 수하들의 신망이 두텁습니다. 피곤하실테니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오’

#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전음을 들은 죽립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려는 순간, 객잔 밖이 시끌해졌다. 그리곤 또 한 무리의 남자들이 객잔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파란색 무갑에 병장기를 걸쳐 맨 무인들이었다. 가장 먼저 객잔에 발을 디딘 한 사내의 가슴팍에는 ‘윤(尹)’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 있었다.

“어서오십쇼 대인들” 점소이가 다가갔지만 그들은 자리에 앉지 않는 대신, 주변을 쓰윽 둘러봤다.

이들의 등장에 객잔은 금새 조용해졌다.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무인 하나의 시선이 파란색 함으로 꽂혔다. 그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함으로 다가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그의 손이 주머니로 옮겨갔고 녹색 두건을 두른 무인들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병장기를 주섬주섬 챙기는 이들도 보였다.

이 때였다. 다시 한번 주위를 살핀 사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빼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은자 꾸러미였다.

“여기 큰 판이 벌어진다 해서 들렸소. 난 더민주 문파 윤영덕 협객에게 은자 20냥을 걸겠소”

그가 파란색 함에 은자를 넣는 동시에 함께 온 일행들은 “윤 협객”을 외치며 환호했다.

무리들 일부는 파란색 함으로 다가가 은자를 걸었고, 비어있던 함은 금세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공이 실린 목소리로 한 명의 무인이 외쳤다.

“우리 윤 협객으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현 무림맹 군주가 기거하는 청와대전 호위부에 근무하였소. 지근거리에서 군주를 보좌하며 수하들의 신임을 얻은 걸출한 분이지요”

인상을 찌푸린 채 녹색 두건을 두른 한 남자가 탁자를 쿵 내리치며 소리쳤다.

“어허, 윤 협객은 무림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더민주 문파 신예 무인이오. 내공이 3갑자에 이르는 장 대협에게 상대가 되겠소”

남자의 일침에 객잔은 한 차례 웅성거렸다.

그러자 파란색 무갑을 입고 수염이 덥수룩한 무인이 곧바로 반박했다.

“무슨 소리하는게요. ‘실전은 기세’요. 호남성 내 더민주 문파의 세가 하늘을 찌르는데다 윤 협객은 이번 비무대회를 위해 수 십년간 칩거하며 내공 연마를 해온 분이시오. 조선무술대학관에 입관해 학관 생도들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지요 아마. 이제 큰 뜻을 펼칠 때가 됐으니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

또다른 무인 한 명이 그의 말을 거들었다.

“수련을 통해 다져온 그의 무공도 경지에 올랐소. 전력에너지를 응축해 장풍을 쏘아대는 필살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지요”

양 무리의 설전에 객잔 내부가 시끄러워지자 죽립을 눌러쓴 사내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 잠깐의 마주침, 비무대회서 봅시다

조용히 객잔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사내의 귓가에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는 속으로 되뇌였다. ‘음, 드디어 오는가 보군’

죽립을 머리 위로 살짝 치켜든 채 말발굽 소리가 나는 곳을 노려보는 죽립의 사내. 그는 바로 동남갑 비무대회에 출전하는 장병완 대협이었다.

‘끼이이잉’ 말이 객잔 바로 앞에 멈춰섰고, 파란색 무갑을 입고 애체(愛逮 ·안경)를 낀 한 남자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 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숨 막히는 3초의 시선 교환, 두 무인은 서로를 직감하며 서서히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잎새달(4월) 보름달이 꽉찬 날, 봅시다’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은 두 명의 무림고수는 서로에게 닿았던 시선을 거둔 채 조용히 각자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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