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빨강 노랑 초록 하양 검정…

모든 색에는 이야기가 있다…그리고 변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컬러의 비하인드 스토리

11가지 색이 가진 상징성

역사적·사회적 의의 소개

■색의 인문학

미셸 파스투로·도미니크 시모네 저

고봉만 역/미술문화/2만2천원

평화를 상징하는 ‘파랑’은 언제부터 모든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일까? 맑고 깨끗한 느낌의 ‘하양’이 웨딩드레스의 색으로 채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랑’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결정적 이유는 금색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일까? ‘검정’의 인기와 종교 개혁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파랑’을 남자의 색, ‘빨강’을 여자의 색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색의 상징성은 절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사랑을 받기도,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웨딩드레스’ 하면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하양’색을 떠올린다.

그런데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웨딩드레스의 색은 화려하고 빛나는 ‘빨강’이었다. 빨강은 권력의 힘, 전쟁에서의 승리, 화려한 아름다움 등을 의미했기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색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즉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빨강의 부정적인 면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세사 연구가이자 색의 역사에 정통한 미셸 파스투로의 저서로, 프랑스 내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Le petit livre des couleurs’의 개정판이다. 프랑스 유명 일간지 l’Express 여름 특집 기사들을 모은 것이다. 소설가 겸 기자인 도미니크 시모네가 질문하고 미셸 파스투로가 답하는 형식을 통해 컬러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색이 가진 상징성, 역사적·사회적 의의를 짚어본다.

저자는 사람들이 색에 품고 있는 사회 규범과 금기, 편견 등을 설명하고,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어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태도, 언어와 상상계에 미치는 색의 영향력을 거론한다. 그림이나 장식물, 건축, 광고는 물론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제품, 옷, 자동차 등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색이 비밀에 싸인, 불문(不文)의 코드로 지배되고 있면서.

저자는 우리가 파랑, 빨강, 하양, 초록, 노랑, 검정의 여섯 가지 ‘기본색’으로 이루어진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파랑’을 언급한다. 현대인들이 파랑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색에 합의를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어떤 것도 위반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정감을 주며 사람을 결집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연합과 유네스코, 유럽의회, 유럽연합 같은 국제기구들이 파랑을 상징색으로 선택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빨강’은 오만함과 권력지향성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봐 주기를 원하고, 다른 모든 색을 압도하고자 한다. 빨강의 과거는 오늘날과 달랐다. 중세 시대에는 성모 마리아의 영향으로 파랑은 여성성을 상징했다. 권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빨강은 남성적 이미지였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파랑은 눈에 덜 띄는 색으로 여겨져 남성의 색이 되고, 빨강은 여성 쪽으로 이동한다. 오늘날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을, 여자아이의 색으로 분홍을 선택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순결함을 떠올리는 ‘하양’은 천사나 유령의 색, 자숙과 불면의 밤을 상징하는 색이다. 하양은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은 이 색에 좀처럼 만족하지 않았다.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하양보다 더 하얀’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초록’도 제 나름대로 할 말이 많다. 모두가 녹색을 외치는 바람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고 저자는 말한다. 녹지대, 녹색 번호, 녹색 교실, 녹색당… 심지어 녹색이 자연이나 청결과 연상된다고 믿고 길거리 휴지통까지 녹색으로 칠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어쩐지 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평한다. 겉보기와 달리 녹색은 위선과 교활, 요행과 우연, 불충한 사랑을 상징하는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한다.

‘노랑’에 대해선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으로 분류한다. 작은 세계에서 노랑은 이방인이요, 무국적자로 규정한다. 또한 사람들이 경계하는 색이라고 한다. 빛바랜 사진, 쓸쓸히 스러지는 낙엽, 배신자가 떠오른다면서. 그런데 고대 로마인들은 종교 의식이나 결혼식 등에서 흔쾌히 노란색 옷을 걸쳤고, 아시아나 남아메리카 같은 비유럽 문화권에서도 노랑은 항상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노란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노랑은 언제나 좋은 것이며, 권력과 부와 지혜를 상징했다. 이에 저자는 노랑은 콤플렉스투성이로, 자신의 처지에 부당함을 느낀다면서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홀대했으니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검정’은 엄격함과 뉘우침의 색으로 동료인 하양과 함께 우리의 상상계를 별도로 구성한다. 그 세계는 흑백사진과 흑백영화가 우리에게 보여 준 세계, 즉 컬러가 묘사한 것보다 더 ‘진실’되게 표현될 수 있는 세계와 닮아 있다. 과거의 낡아 빠진 산물이라고 생각해 내쳐 버린 흑백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의 꿈과 사유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로.

그럼 여섯 가지 색 다음에 오는 색은 무엇일까? 저자는 보라, 주황, 분홍, 밤색, 회색을 후발주자로 꼽는다. 이 다섯 가지 ‘중간색’들은 주로 과일이나 꽃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 고유한 상징성을 갖추면서 건강과 활력을 상징하는 주황이나 도발과 허세를 상징하는 분홍처럼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 열한 가지 색 다음에는 분리와 분류가 불가능하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다채로운 색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4·15 총선을 향한 후보자들이 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후보들과 선거운동원, 지지자들은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이 표방하는 색상의 옷을 입고 있다. 파랑, 빨강, 녹색, 노랑, 분홍…. 후보들의 면면과 함께 옷에 담긴 색의 의미와 상징성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