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58)

6부 3장 유흥치 난(558)

군사를 철수하라는 비국(備局:군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던 관아)의 전지(傳旨:상벌에 관한 임금의 명을 해당 관청에 전달하는 지시 사항)는 다음과 같다.

-유흥치가 이미 가도에 들어왔다고 하니 군사로 공격하여 토벌하는 것이 마땅하나 유흥치가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가도를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말의 옳고 그름은 알 수 없으나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켜 점차 차가운 가을 날씨가 닥치면 갈포만 입은 병졸들이 오래도록 해상에 머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급히 군사를 철수하는 것이 좋을 듯하며, 유흥치에게도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당부하고 철수하는 뜻을 알리도록 하라.

어이없는 일이었다. 가도는 엄연히 조선 땅이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조선국의 해로 중심 축선이다. 그런데 이 섬을 유흥치가 다스리는 것을 허용하라고? 점령을 공인하라고? 정충신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충신은 당장 총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가도를 내주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장수는 내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일방 한뼘이라도 더 땅을 빼앗아 와야 하는데, 내 땅을 내주다니요. 부모국의 요구라 할지라도 부당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선(戰船)을 발진하겠습니다. 전라도 수군과 첨방군을 앞세운 아군 병력은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주력과 그 후예들이니 정예군대입니다. 유흥치가 우리에게 쫓겨서 섬 안에 들어온 지가 며칠 되지 않아 속으로 놀라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발선(發船)하는 것이 주사원수의 임무입니다. 부당하게 철수하는 것은 장수의 길이 아닙니다. 다만 계략을 쓸 것입니다. 신은 광량을 지나 노강으로 전진해 가도와 가까울 때, 후금 장수 용골대(龍骨大)가 강을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치겠습니다. 적진의 움직임이 수시로 변하는데, 오직 발진만이 목표입니다.

유흥치와 그 아우들이 89척의 선단을 이끌고 등주(登州:산동반도의 한 지명)에 갔다가 가도에 돌아왔는데 명나라 황제 숭정제(의종)의 칙명을 받아 가도를 다스리는 책무를 맡았다고 호령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가도와 여러 섬 주민들에게 통첩을 보내고, 조선국의 접반사와 역관을 불러 알렸다.

“가도는 명실공히 명의 땅이니라.”

숭정제의 명은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만큼 그의 영은 땅바닥에 곤두박질할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숭정제는 즉위 초 악명 높은 환관 위충헌과 그 일당을 제거하긴 했지만, 환관의 모함을 받고 영원성에서 누르하치의 후금 군대를 격퇴시킨 원숭환을 처형한 뒤 내부 반란에 직면해 있었다. 몇 년 후 이자성의 반란군이 북경으로 몰려들자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그는 자결해버렸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이런 형편이었으니 북경은 무질서한 가운데 혼란만 가중되었다. 거지가 장수라고 나서도 탓하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속사정을 안 정충신이 유흥치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도를 재점령한 유흥치가 부속 섬까지 질서를 잡은 뒤 정충신에게 경고장을 보내왔다.

-조선이 가도 정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킨 까닭이 무엇이냐. 정충신 네가 어버이 나라를 우습게 여겨도 되느냐. 내가 너 때문에 사색이 다 되었으니 용서치 않겠다.

유흥치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조선 조정에서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기고만장하였다. 정충신은 그의 흉계를 보고 다시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

-천자(명나라 황제)께서 유흥치에 대하여 우리나라에 조명(朝命:조정의 명령)을 내렸다고 하나 신의 생각으로는 흥치가 칙명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의 장난으로 장차 변이 있을 것이므로 필연코 대응하여 우리 땅에서 쫓아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장계가 조정에 당도하기 전에 유흥치의 편지가 정충신 주사원수 앞으로 다시 왔다.

유흥치의 편지는 다음과 같다.

-내가 천자의 신임을 받은 것은 명국의 영토내에서 일어난 비상사태를 내가 수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자의 명을 받고 가도에 들어온 것이니 나는 사사로운 욕심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가도에 들어온 것은 후금을 경계하자는 뜻이요, 후금 오랑캐와는 적개심을 가지고 원수로 대하여 함께 싸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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