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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63)

기사승인 2020.04.09  17: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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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63)
6부 3장 유흥치 난(563)

1631년 5월, 후금의 홍타이지는 자신과 동맹을 맺은 유흥치를 죽였다는 이유로 심세괴와 장도를 잡기 위해 가도로 출병한다고 선포했다. 달리 말하면, 가도를 점령하겠다는 구실이었다. 홍타이지는 조선에게는 식량을 대라고 요구했다.

국제전의 양상은 이렇게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힘이 없으면 꼼짝없이 끌려다니는 형국이었다. 가도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니 조선은 명과의 관계는 물론 후금과의 관계에서도 안정될 수 없었다. 자꾸만 막다른 길목으로 내몰리는 양상이었다.

조정의 우유부단함과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임기응변 정책은 이렇게 부작용을 낳았다. 목표를 설정해 일관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외교를 꾸려가니 나온 현상이었다. 이것은 점차 후금과의 갈등을 쌓아감으로써 차후 병자호란의 치욕을 잉태하는 과정이었다.

인조는 인조반정의 기치였던 숭명(崇明)의 이념을 버릴 수 없었으나 그 대가는 혹독하게 치르게 되었다. 후금은 숭명배금(崇明排金)을 이유로 사사건건 간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정충신은 귀환 명령을 받았다.

새벽 닭이 울고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살을 간지럽히는 서풍이 불고 있었다. 서풍은 해뜨는 동쪽으로 부는 바람으로 뱃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람이었다. 정충신은 전라도 수군을 모아 이별을 고했다.

“너희는 역할을 다했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이름없이, 그리고 묵묵히 나라를 위해 제 역할을 다했다. 그것을 보고 누가 충신이라고 하지 않으리요. 유흥치를 물리친 것은 직접 우리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지만, 전라도 수군의 압박으로 잡은 것이다. 우방국이라고 해도 삿된 무리가 있으면 잡아족쳐야 한다. 그것을 잘 헤아려 대비한 것을 칭송해마지 않는다. 이제 여름철로 접어드니 노를 저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무사귀환을 빈다.”

병사들이 배에 올라 고향에 돌아갈 생각에 들뜬 모습들이었다. 정충신은 그들을 보내놓고 오시(午時)에 선단을 꾸려 출발했다. 황포돛이 바람을 빵빵히 먹자 군선은 한양 쪽으로 세차게 나아갔다. 서강 마포에 이른 것은 이틀 후 아침녘이었다.

“주사원수 정충신 장수의 개선을 축수드리옵니다.”

미리 연락을 받았던지 한강을 지키던 초장(哨將)이 달려와 환영 인사를 했다. 정충신은 노를 저어온 수군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그간의 노고와 충성심을 치하하며 각자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록 명했다.

“다음 소집이 있으면 지체 말고 나오기 바란다.”

부하들들 돌려보낸 뒤 정충신이 미리 나온 선전관의 안내로 받아 대궐로 들어가 상감에게 복명의 예를 갖추었다. 왕이 버선발로 나와 그를 맞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가 용좌에 앉은 뒤 말했다.

“전란 중에 몸이 좋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이를 숨기고 부하들을 이끌어 유흥치 부대를 척결하고, 관서 지방의 백성들까지 평안하게 다스렸다니 과인이 기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선 수군과 첨방군의 맹활약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명나라 병부(兵部)에서도 고맙다는 글월을 과인에게 보내왔다. 누가 한번 읽어보거라.”

왕이 신료들을 내려다보자 이조판서 최명길이 나섰다.

“신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충신은 유흥치 토벌을 위한 군사작전으로 양측 서로가 무기를 맞대지 않고서 우리 조선이 승리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명나라에서 ‘이번 귀국에서 유흥치 난을 평정한 것은 명의 목의 가시를 제거했노라’고 칭찬했습니다. 간사한 유흥치 무리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명나라는 더욱 평안하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헤매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주사원수 정 공의 이름이 중화(中華)에서도 널리 떨쳐지고 있음은 우리 조선의 자긍심이 되었사옵니다.”

“장한 일이로다. 상으로 내구마(內?馬) 한 필을 내리도록 명하노라.”

내구마는 내사복시에서 기르던 말로 주로 임금이 거동할 때 사용되는 준마였다. 왕족과 정승 등 최고위 관료가  큰 공을 세웠을 때 하사품으로 쓰였으나 정승 중에서 내구마를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정충신은 상감의 후의에 감격하여 눈물이 흐르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뜰에 내려 네 번 절하고 대궐을 나왔으나 마음은 무거웠다. 마음 한켠으로 돌덩이같은 무게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전쟁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궁궐은 너무도 한가롭고 느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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