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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77)

기사승인 2020.04.29  17: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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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77)

6부 4장 귀양

이때 추신사(가을철에 외국에 보내는 사신) 군관 이원경이 후금국의 왕자 편지를 가지고 왔다. 관솔불에 붙여 편지를 읽으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경험하여 보건대, 정충신 장군은 사려깊은 무장이오. 그래서 긴히 말하오. 근심과 기쁨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서로 알려주는 것이 이웃 나라의 도리이며, 형제국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나라 임금이 지난 7월 27일(1631년) 군사를 일으켜 서쪽 명나라로 진격하여 대릉하(大陵河:중국 요녕성 서부의 강줄기를 합쳐 요동만으로 흘러드는 길이 397km의 강)에 이르렀으나, 사면이 포위당하였고, 명나라의 조, 하 두 총병이 산해관(만리장성의 시작점) 서쪽과 황하 이북의 병마 10만을 거느리고 원구(원정)하여 우리 군과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모두 패하여 장수 33명이 생포되었소. 대릉하에서는 식량도 떨어져 수일내로 패몰(敗沒)하게 되어 귀국 사신에게 전하는데, 도울 일이 있으면 하루빨리 찾아주시오.

말하자면 군사 지원이든 군량 지원이든, 병기 지원이든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위해 정충신을 띄워주고 거부할 수 없도록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충신은 달리 생각했다. 그는 연락병을 불러 명했다.

“급히 심양으로 가라. 아무 왕자라도 만나서 진의를 살펴라.”

왕자의 편지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왕자 이름을 도용해 군사 충원을 하려는 변경 장수의 계략(計略)인지 아닌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모문룡, 유흥치를 통해서 보듯이 본국의 명과 상관없이 그들은 사익을 챙기기 위해 멋대로 위세를 부리고, 영을 내렸었다. 그것을 정충신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산해관 전투도 이미 끝났다.

전쟁이란 한두 군데 진다고 해서 지는 것이 아니다. 한곳은 밀리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고,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전세를 뒤집고, 끝내 전승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지금 후금군의 주력은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까지 진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양을 다녀온 연락병이 보고했다.

“지금 왕자들은 전선에 투입되어서 심양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편지를 보낸 자가 왕자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정충신은 편지를 묵살했다. 그러자 오랑캐의 차사 운난이 찾아왔다.

“왜 응답이 없소이까. 군사원조를 독촉한 때가 언제인데, 하세월이오?”

그는 수행병을 시켜 관향사(管餉使:평안도의 군량을 관리하던 관직) 박추의 멱살을 잡아 패대기질 쳤다. 쇠줄로 묶어 창고에 쳐박고 주먹질하고 위협하는 사이 운난이 고함을 지르며 호령했다.

“이런 상놈의 새끼, 편지를 보냈으면 응당 가타부타 응답을 해야지, 묵살해버려? 너 한번 제대로 디져봐라.”

그가 박추의 머리를 그대로 받아버렸다. 박추의 입에서 옥수수알처럼 이빨 넉대가 고스란히 쏟아져나오고 입에서 피가 나는데, 박추는 워낙 심성이 약한 사람인지라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시늉을 했다.

“정충신 어디 갔나?”

“모릅니다. 때리지는 말아주시오. 살려만 주시오.”

그때 정충신은 전 평안병사 유림이 귀양지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박천으로 나가 그를 만났다. 서로 앞일을 걱정하며 회포를 푸는데 떠나오려니 마음이 쓸쓸해서 유림과 함께 작은 나룻배로 청천강을 건너 칠불암에 이르러 불공을 드렸다. 마음은 유림과 함께 더 소일하고 싶었지만, 부대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알고, 그쯤해서 유림과 헤어져 진영으로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그 지경이었다. 차사 운난이란 놈이 진영을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저 자를 잡아라.”

군교 지휘 아래 병사들이 달려들어 운난과 그 병정 넷을 체포해 포박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주먹을 맞아 병정 네 놈 모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한 놈은 옆구리에 창을 맞고 피를 쏟으며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보았는지 오랑캐 병정 한 놈이 포박당한 팔을 빼더니 칼로 그자의 복부를 찔렀다. 칼을 맞은 병정이 파르르 떨다가 숨이 멎었다.

정충신은 병사들을 탓하지 않았다. 사기를 진작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차후의 문제는 그가 감당하면 되었다. 그는 둔전(屯田:지방 주둔병의 군량 자급을 위해 경작하는 밭) 상황을 살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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