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강진 원주이씨(原州李氏) 병사공파 백운동종가/백운동원림.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선비가 꿈꾸는 이상세계…백운동 종가
강릉부사 이영화 해남 은둔
함경 병사 이억복 병사공파 열어
이담로 별서정원 백운동 입촌
사도세자 사부 이의경 낙향거사
정약용 등 명사 발자취 전승
맥을 잇는 강진 차문화 산실
 

월출산 옥판봉.
월출산 구정봉 서남쪽 정상 봉우리. 솟은 기암괴석이 마치 임금 앞에 입조할 때 신하가 손에 드는 홀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인 봉우리가 옥판봉이다. 백운동 제1경으로 꼽히는 옥판상기(옥판봉 상쾌한 기운)는 정선대에서 볼 수 있다.
백운동별서정원 후문 쪽 차밭에서 바라본 월출산 풍경.

전라도 명산 월출산, 남쪽 계곡에 조선 명사들이 즐겨 찾았던 별서정원(세속에서 벗어나 전원 깊숙한 곳에 따로 생활하도록 지어 놓은 정원)이 있다. 강진 원주이씨 병사공파 종가가 15대를 이어 가문의 전통을 계승한 백운동원림(명승 제115호)이다. 종가가 세거지를 강원도 원주에서 전라도 해남으로, 다시 강진으로 옮긴 사연의 이면에는 ‘절의(節義)정신’이라는 집안 전통이 있었다. 백운사가 있었던 골짜기라 해 백운동(白雲洞)으로 불리는 이곳은 풍수에서 말하는 금구출복형(거북이 머리를 움츠린 형국의 집터 모양) 명당이다. 전남 강진 성전면 월하리 원주이씨 종가를 찾아 종택에서 빛나는 동양적 아름다움의 근원을 살펴본다.

◇ 강릉부사 이영화 해남 은둔

박혁거세를 추대해 신라를 세운 6촌장 이알평을 원조로 하는 경주이씨 후손으로 고려 때 병부상서를 지낸 이신우가 원주에 터를 잡아 원주이씨 가문의 시조가 된다. 이신우의 15세손 이영화(1430~1517)는 경기도 광주에서 전라도 해남으로 은둔했다. 단종 때 강릉부사였던 이영화는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계유정난 세력의 가담 유혹을 호통으로 뿌리치고 김종서 당으로 몰려 가문 참화에 직면하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남쪽 해남에서 은둔, 칡과 고사리로서 연명하며 영월에서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한을 안고 살았다고 한다. 이후 벼슬에 나가지 않지만 선비정신을 지키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배경을 마련하기 위해 해남 마산에 제방을 쌓아 농토를 개간했다고 한다.

◇부자충신 이억복 병사공파 열어

강진 성전으로 입촌한 종가 사람은 무장현감을 지낸 이남(1505~1555)이다. 을묘왜변(1555) 때 해남 북평 남창 달량성이 왜적에 포위돼 구원을 요청한 해남현감 변협을 가솔과 함께 지원하다 전사해 호남절의록에 공적이 기록됐다. 이영화의 증손자 이계정(1542~1595)은 충청수군절도사로 삼남의 군량을 경상군영에 운송하다 왜선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충의공신이다. 이영화의 증손자이자 이남의 삼남 이억복(1537~?)은 함경도 남병사로서 변방에서 이름을 떨치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일으킨 충신으로 병사공파를 열었다. 이억복의 아들 이해(1568~1611)가 백운동종가를 열고, 이해의 손자 이담로(1627~?)가 백운동별서정원을 조성해 제1대 동주가 된다.

◇부귀영화 버리고 낙향한 선비정신.

종가의 6세손 이의경(1704~1778)은 사도세자의 스승으로, 익위사부솔 벼슬을 지내다 세자의 존경을 시기하는 간신들을 보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학문에 매진했다. 이후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감금돼 죽자 3년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던 절의충신이다. 조선후기 승려화가 색민이 그린 ‘이의경초상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해 보존한다.

◇이시헌 묶은 책자로 빛나는 보물들

이해의 9세손 이시헌(1803~1860)은 다산 정약용의 제자로 선대조상이 남긴 문집, 행적, 편지 등은 물론 경향 각지 명사들이 쓴 별서 정원 풍광에 관한 제영시를 묶어 책자로 만들면서 가문과 별서정원을 중흥시킨 인물이다. 백운동의 풍광을 정약용이 쓰고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첩’을 비롯해 실학자 이덕리(1728~?)가 쓴 한국 최초의 차(茶) 전문서 ‘동다기(東茶記)’를 필사하고 가전했다. 11세손 이한영(1868~1956), 14세손 이효천(1933~2012)과 같은 우리 차의 대가들이 금릉옥산차, 백운옥판차, 원산작설차 등 유명한 차들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백운동종가의 전통 계승이 있다.

◇계곡 다리 건너면 꿈꾸는 이상세계

북쪽으로 북한산 닮은 월출산의 ‘구정봉’ 서남쪽 봉우리가 보인다. 신하가 입조할 때 손에 드는 ‘홀’처럼 솟아있어 옥판봉이라 했는데, 평천하의 꿈과 이상을 떠올리는 상징물이다. 계곡을 건너 속세와 멀어진듯하지만 도학적 이상국가를 꿈꾸며 학문에 정진했던 선인들의 발자취가 백운동종가에 전승되고 있다. 명승 제115호로 지정된 백운동원림의 풍광에 대해 정약용은 ‘백운동12경’이라 칭하며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 산다경의 동백나무그늘, 백매오의 매화향기, 단풍 붉은빛깔 옥구슬폭포, 마당을 돌아나가는 물굽이, 창하벽에 붉은 먹글씨, 정유강의 용비늘 같은 소나무, 꽃계단의 모란, 사랑채 취미선방, 풍단 단풍나무 비단장막, 정선대, 운당원의 우뚝 솟은 왕대나무”를 백운첩에 남겼다.
글·사진/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정선대. 창하벽 바위 위에 세운 정자.(백운동 제11경 선대봉출)
백운동 내원 모습
취미선방. 마치 절집의 선방처럼 아무 꾸밈도 없는 작은 사랑방이라는 뜻으로 선방이라 부른다.(백운동 제9경 십홀선방)
꽃계단에 핀 모란(백운동 제8경 화계모란)과 마당을 돌아나가는 물굽이(제5경 곡수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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