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92)

6부 4장 귀양

조보(朝報)에 실린 박황의 상소문은 송곳과 같았다. 왕에게 올린 상소문은 이러했다.

-우리나라를 스스로 강하게 할 계책이 없으면서도 경솔하게 후금과 화친하는 것을 끊고자 하니 신 박황은 실로 그 정책이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당초 이 정책은 상감의 영단으로 지난번 비변사 회의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들은 속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상감의 말씀에 따라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급기야 의주에서 김시양과 정충신의 상소가 오자 외양적으로는 문초할 것을 청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들의 정책을 찬성하는 대신들이 많았습니다. 정충신의 주장이 수긍되는 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 정충신은 일단 호흡을 정리했다. 자신의 뜻을 따라준다니 일견 고마운 일이이었다.

-그러나 상감의 뜻이 달라지자 곧 태도를 돌변하여서 김시양, 정충신을 목 베어 여러 사람 앞에 불충의 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하는 사람을 잡아들여 족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화친하는 것이 옳으면 화친을 하는 것이고, 절화(絶和:화친을 끊음)하는 것이 옳으면 절화하는 것으로, 和냐 絶이냐 하는 두 가지 말로 결단을 내리면 되는데, 상감이 옳다고 하면 종전까지 의견을 달리했던 자들이 일시에 옳다고 나서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면 따라서 몰려들어 그르다고 합니다. 만약에 성상의 생각이 그릇되면 어찌하겠습니까. 이래서야 과연 중신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시퍼런 절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왕의 뜻이나 사대부의 의견에 도전하면 목숨을 내어놓을 수도 있는데 거리낌없이 왕의 태도까지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신이 비판하였으니 신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결코 현직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라가 올바르게 간다면 신의 목숨 하나쯤은 언제 버려도 괜찮습니다.

“이런 쳐죽일 놈! 감히 대신들을 능멸하다니!”

대신들이 수염을 파르르 떨며 노여워하는 모습이 눈 앞에 훤히 그려졌다. 대신들은 망신을 당했다고 당장 박황의 목을 가져오라고 방방 떴을 것이다.

조보를 읽고 난 뒤 정충신은 울었다. 이런 충신이 있다는 것, 그 충절이 자신의 이상과 맞닿아 있다는 감격이 가슴을 꽉 메우고 있었다. 가깝게 지낸 사이도 아닌데, 정충신의 유연한 외교술 하나를 믿고 목숨을 걸고 지지해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사신 김대건이 후금국에 들어갔으나 궁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받았다. 김대건은 후금의 궁궐 보위대장에게 국서를 맡기고 객관에 머물러 기다렸다가 열흠만에 답서를 받아 귀국했다. 후금국의 답서는 협박장이었다.

-내가 몇차례 글을 보내고 정직한 말과 관대한 뜻을 보인 것은 조선왕이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기를 바랐던 것이지, 자기 죄를 감추고 도리어 나에게 대항할 줄은 몰랐다. 나는 정묘년(1627년 졍묘호란)에 맹약한 이래로 조선왕의 마음이 변해버린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였다. 나의 생각은 조금도 바뀐 일이 없다. 정묘년 맹약을 맺었을 때, 가도를 점령한 명나라 군사들이 육지로 올라올 때, 조선국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였기에 나는 그러리라 믿고 군대를 철수했다. 또 조선왕이 보낸 아우가 약속대로 친 아우라고 하였으나 먼 일가붙이를 속여서 보냄으로써 나를 속였다. 이렇듯 조선왕은 여러차례 맹약 시의 약속을 저버렸다. 사악함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렇게 변심하니 그 벌로 세폐(歲幣)를 증액한 것이다. 귀국이 세폐의 증액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게 행동해야 하거늘 무엇 때문에 자기 잘못을 숨기고, 나를 속이려고만 하는가.

다음의 글은 더욱 가관이었다.

-나는 귀국에서 보내온 글에 언급된 말 이외에 숨겨진 뜻을 헤아리고 있다. 할 말이 있으면 떳떳하게 고할 일이지, 우리에게 허물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비겁하다. 세폐를 보내지 않고, 외교도 끊겠다고? 오만하다. 이는 조선왕이 나하고 수교할 뜻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는 협박이다. 지금이라도 조선왕이 뉘우치는 뜻으로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꾼다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앞서 말한 것만을 고집하고, 우리나라를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조선왕의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조선국이 져야 할 것이다...

문면을 보면 조선의 하늘에 전운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저것들의 시비에 말려들었으니 호전성을 지닌 그들에게 빗장을 열어준 꼴이다. 정충신은 김시양과 함께 후금국에 보내는 국서의 내용을 부드럽게 고쳐서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말고 재량으로 국서를 고쳐서 보냈다면 이런 사단이 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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