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영암 김해김씨(金海金氏) 사군파 양무공종가 / 양무고택.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 전남 종가 재발견

가야·신라·고려·조선 명문가문 ‘金海 金’

구고사 전경
양무고택 전경

김해김씨 사군파 중조는 김익경
고려충신 김진문 백암재 추모제례
양무공 김완 장군 4대 공신 군봉
가훈 가전충효, 종훈 단합하라
50만명 대종회 법인 회보 발행

국립공원 월출산 서쪽 전남 영암 서호 화송마을에는 73세대를 이어 700만명으로 번성한 명문거족의 대표 종가가 있다. 가문의 후손 간에 돈독히 협력하며 선조들이 남긴 빛나는 유산을 밝히고 있는 김해김씨 사군파 대종회와 양무공종가를 찾아 가락국 수로왕 후손의 자부심으로 역사의 거친 파도를 헤쳐 온 가문 내력을 살펴본다.
 

김완장군 영정(보물 제1305호)

◇ 김해김씨 사군파 중조는 김익경

서기 42년 개국하여 491년 간 한반도 남부의 철기문화를 이끈 나라가 가락국이다. 금관가야가 있던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김씨(金海金氏)의 시조가 김수로왕이다. 10대 양왕(김구형)은 위민(爲民)의 뜻으로 신라와의 전쟁 대신 평화롭게 양위했다. (양왕릉 사적 제214호)

양왕의 증손자인 13세손 김유신(595~673)이 김해김씨 중시조다. 그는 신라 무열왕을 도와 당을 물리치고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뤄 흥무대왕에 추존(사후에 왕으로 모심)됐다. 고려 감무 벼슬을 한 51세손 김익경이 중조로서 사군파를 열었다.

◇ 4대가 군봉 받은 조선 명문 사군파

김익경의 8세손부터 11세손까지 4대가 나라에 공을 세워 군(君)으로 봉(封)해져 파명을 사군파(四君派)라 한다. 고려말 대제학에 오른 사군파 3세 김진문은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에 은거한 고려 충신이다. 그의 증손자인 6세 김한성(?~?)은 개성을 떠나 전라도 영암 서호에 입향했다.

광양현감을 지냈던 김극조(1534~1591, 8세손)는 정여립모반사건의 이발과 친하다고 투옥됐다가 한덕수(후임 현감)의 모함과 문서위조가 밝혀져 무혐의로 출옥한 뒤 병사했다. 아들 김완(1577~1635, 9세손)이 부친 복수를 잊지않았고, 진무공신에 녹훈되면서 김극조는 ‘학천군’에 봉해졌다.

◇복수의 활 두번 쏜 김완 장군 손자가 명궁

9세손 김완(시호는 양무공)은 정유재란 때 남원 등에서 큰 공을 세웠고, 이괄의 난을 평정한 선봉장으로 ‘학성군’에 봉해졌다. 인조는 그를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제수하고 영정(보물 제1305호)을 하사했다. 부친 묘터 관련 호랑이 설화를 비롯해 말무덤, 복수다리, 피바위(血岩) 등 스토리가 전해진다.

10세손 김여수(1600~1670)는 변방 오랑캐를 잘 다스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로서 ‘해성군’에, 11세손 김세기(1631~1685)는 임금으로부터 명궁을 인정받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로서 ‘학림군’에 봉해졌다.

◇한류로 주목받는 제례의식 보존 필요

종가의 가훈은 ‘가전충효(家傳忠孝·대를 이어 충성·효도할 것)’다. 법인인 대종회는 ‘단합(團合)하여 위선(爲先)하고 부종(扶宗)하자’를 종훈으로 가문의 전통을 계승한다. 22년간 131회의 회보를 발간하면서 50만여명 회원을 단합시켜 선조가 남긴 빛나는 유산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다. 묘소가 개성에 있는 선조들(김익경 등 5세 11위)을 추모하여 매년 백암재(영암군 서호면에 마련함)에서 1천여 후손들이 참배하는 제례를 거행한다.

◇종가의 보물이야기

김완 장군의 전승 유허비(전라남도기념물 제50호), 묘소와 신도비(전라남도기념물 제40호), 영정(보물 제1305호), 학성영당과 부조묘 및 구고사(전라남도기념물 제49호) 등 보물을 관리한다. 김재호 (사)김해김씨사군파대종회 회장은 “16세손 김영택의 ‘숭효록’, 김완장군 ‘금궤철권(공신녹권의 패)’, 구고사 대제 등도 가치있는 보물로서 종가와 대종회가 보존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사진 김해김씨사군파대종회 제공
 

김완장군 금궤철권(공신녹권의 패)
구고사 내에는 학성영당 부조묘 유물관 양무고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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