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99)

6부 5장 귀향

막쇠라는 군졸은 장똘뱅이처럼 싸돌아다니는 인생답게 넉살이 좋고 아는 것도 많았다. 칼끝처럼 매서운 북방 변경에서 오랑캐 마을을 습격하며 연명해온 경력 때문인지 후금 소식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정충신이 그의 말을 타고 가는데 어느덧 송악산 골짜기에 이르렀다.

“장수 나리, 잠시만 기둘려볼라요?”

막쇠가 산 속으로 들어간 한참만에 말을 타고 나왔다.

“이 골짜기에 꼬불쳐 놓은 내 말이구만이라우.”

그는 종자를 뒤에 태우고 정충신을 따랐다. 그러면서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씨부렁거리기 시작했다.

“요승 노릇하기 참 쉽더랑개요. 머리만 밀면 댕개요. 지방 수령도 중이라면 괄세 못하지라우. 어느날 쌀가마니를 성황당에 올려놓고 치성을 드리지 않으면 집안에 우환과 사달이 날 것이라고 점지하지요. 그렇게 해서 쌀을 올려놓지 않으면 과연 어느날 밤 그 집 며느리가 납치되고, 창고에 불이 나버리고 말지라우.”

“어떻게 그런 예언을 한단 말이냐. 과연 신통력이 있단 말이냐?”

“신통력이나마나 소인이 똘마니들을 시켜서 한 밤중에 그 짓을 해버링개 그렇지라우. 깊은 밤중에 여자를 납치하고 불을 질러버링개 요승의 예언이 과연 딱 맞아떨어지는 것잉마요.”

“덱기놈.!”

“그렁개 수령들도 내 말을 무시하들 못하요.”

몸이 땅딸막하고, 민첩하게 행동해서 소년 같았으나 막쇠는 이십대 중반이었다.

“열댓 살때부터 객지로 나와 벼라별 부잡한 짓거리는 하고 살았고만이라우. 그런 중에 수군으로 차출된 것이 영광이었는디, 졸지에 풍랑을 만나 낙오가 되어 도망병이 되어불고, 평안도 해안에 상륙해 함경도 황해도를 떠돌면서 불한당 두목이 되었지라우. 눈꼴사나운 것을 많이 봤소야. 전란 중에도 조정 신료들의 추악한 행동이 환장하게 하더만요. 범죄를 저질러도 죄의식이 없게 만들더랑개요. 지방 수령 배때지를 창으로 긁어버려도 미안한 생각이 안듭디다. 그 새끼들이 워낙에 백성들을 착취하고, 남의 마누라도 지것마냥 데려가 살아붕개 그런 수령을 조자불면 다들 좋아하지라우. 조정도 그렇다는 것이요. 한 마디로 막가자는 세상이요. 못된 짓거리해도 암시랑않은 마음이 등개요.”

야만의 소굴에 갇혀도 떳떳해지더라는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전시 중인디도 권력층들이 최전방에서 싸우는 장수를 입맛에 안맞다고 물고랑에 꼬라박듯 좌천시키고, 유배를 보내버린단 말이요. 필시 상납액 땀시 그럴 것이요. 장수들의 공을 시기해서 모함한 뒤 공을 빼앗는 비겁한 새끼들이더랑개요.

마치 정충신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당치 않은 말이다. 어디서 그런 헛된 말을 들었느냐."

"허튼 말이나마나 나가 눈이 없가니요? 나로 말해불면 눈치가 십단이요. 북변에 있을 때 누루하치 자식들 동태도 잘 알고 있소."

"어떻게 알고 있다는 것이냐."

"조선국이 자기들을 야만국이라고 업신여기지만 조선국이 야만국이라고 합디다. 자기들도 상식 정도는 아는디 조선 것들은 몰상식하게 맺은 약속도 헌신짝 버리듯하고, 자기들 이익에 따라 옳은 것도 틀리다고 비틀고, 틀린 것도 맞다고 억지부린다는 것이요. 그런 나라가 어찌 문명국이라고 하느냐는 것이요. 북만의 바람은 살을 찢는 것 같이 매섭고, 오줌을 싸면 곧바로 고드름이 되어 떨어지는 날씨요. 그런 날씨를 견디는 민족인디 약속도 안지키고 맬겁시 건드리면 되겄소? 고것들이 나라를 세우면 중국 역사상 가장 강성한 대국을 만들 것이라고 하등마요. 그런 나라를 만인으로 보는 신료들은 도대체가 뭐냐는 거요? 고것들이 애초에는 조선을 조상의 나라라고 숭상했는디, 조선이 사대다 뭐다 되도않게 명을 빠는 뻘짓을 하고, 후금을 개똥으로 보니 난리가 날 것 같소. 나가 고것들 장백, 두만, 압록강에서 행군을 한 것을 보았는디 모두 할딱 벗고 그 눈밭을 뛰더랑개요."

막쇠는 장백 일대의 삼림지대에서 정탐꾼으로 활동하며 후금군이 필요한 식량과 피복, 일용품을 내다 팔았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험한 산골에서 거칠게 입김을 뿜어내는 것은 달구지의 말과 후금 군사들이었다.

"고것들이 삼림지대에서 호랑이와 멧돼지를 사냥해서 그 자리에서 가죽만 벗겨내고 날것으로 먹는디 완전 짐승이더랑개요. 그것들이 조선을 침공한다고 지금 난리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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