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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04)

기사승인 2020.06.11  18: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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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04)

6부 5장 귀향

“아버님, 그 자가 이렇게 재물을 바치고 갔다면 아버님의 딱한 사정을 보고 그리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 자의 선의를 생각하시고,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머니께도 변변한 보약 한첩 지어드린 적이 없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몸 구완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그 재물의 출처를 아느냐?”

“소자 알 턱이 없지요.”

“그건 필시 장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야 한다. 더러운 이익보다 깨끗한 가난이 내가 바라는 삶의 길이다. 돈에도 혼이 있는 법, 훔친 패물로 장수가 호의호식했다는 말은 내 명예상 허용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져다 주어라.”

그러나 아들 빙도 지지 않았다.

“사대부들 보십시오. 모두 군림하며 내놓고 도둑질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특권인 양 그것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처럼 타락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두고 간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도 선의를 수용하는 일입니다. 이 돈을 버린다면 그의 간절한 성의를 무시하는 일이 되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어머니를 한번 보십시오. 영양실조가 되어서 눈에 석이 들어왔습니다. 이러다가는 자칫 실명이 될지 모릅니다. 못잡수시니 노상 눈이 시리고, 눈물이 흐르고, 앞이 흐릿해진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정충신은 가슴이 아려오는 통증을 느꼈다. 아들의 말에는 아비의 무능을 책망하는 뜻도 담겨있는 것이다. 그는 전선에서 군졸들 먹일 것만 생각했지, 집안의 처자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허기로 쓰러져가는 군졸들을 일으켜세워 싸움을 이기는 방편만이 그가 선택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녹봉을 받아도 군졸들을 위해 모두 풀었다. 이랬으니 후방의 가족들은 스스로 채소를 가꾸고, 품을 팔며 초근목피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충신은 마음을 다잡고 엄하게 말했다.

“남의 적선을 받고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쓸쓸하게 한다. 더 이상 자존심 구기는 일에 빠지고 싶지 않으니 갖다 주어라.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손을 쓴다는 것은 바로 나를 위로하는 일이다.”

빙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여겼던지 보퉁이를 싸들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후 정충신은 간단한 여장을 차린 다음 조랑말에 몸을 의지하고 남행길에 나섰다. 고향길은 빨리 가도 보름은 가야 할 길이다. 한강으로 가는 길에 남산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뇌리에 스치는데 모든 것이 일장춘몽 같았다. 문득 시상이 떠올랐다.



道本無爲豈有名

可待身退待成功

百年優優終何事

向晩槐庭一夢驚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어찌 이름이 있으랴

떨치고 은퇴함이 성공을 기다림이라

한 평생 분주하게 무엇을 이루었나

느티나무 뜰에서 한가닥 꿈에 놀랄 뿐이로다)



이렇게 한수를 지어 읊으니 인생이 가인(歌人)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되돌아보니 한가닥 꿈만 같다. 깊은 회한이 바람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한강 나무를 건너 동작에 이르렀을 때, 사간(司諫) 이성신을 만났다. 장성 입암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이탁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대학자 이해수(李海壽), 아버지는 첨지(僉知) 이권이다. 명문 가문인 것이다. 정충신과는 동향이어서 알고 지내는 사이였으나 깊이 사귀진 못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인사를 걸어왔다.

“정 공, 허한 일을 당했다는 말은 들었소이다만, 지금 어디를 가시는 길이요?

“고향 가는 길이오. 이 사간 역시 어디를 가시는 거요?”

“나는 박금계 선생을 찾아가는 길이오이다.”

박금계라면 정충신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었다. 존경하던 인물인데, 워낙 꼬장꼬장한 성격이어서 여차하면 의금부에 끌려가 치도곤(治盜棍:곤장형)을 당했다. 그의 상소문은 서릿발 같았다. 그때마다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이 사간이 그를 찾아간다는 것이 아마도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았다.

“동행하고 싶소. 이십여년만에 만나는 것 같습니다.”

정충신이 말하자 응하긴 했으나 이성신은 토를 달았다.

“이상한 말을 하면 곤란합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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