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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08)

기사승인 2020.06.17  18: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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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08)

6부 5장 귀향

화류병이라는 매독과 임질이 만연해도 궁중에서도 일종의 역병으로 인식했고, 심히 부끄러운 병이라 하여 음성적으로 퍼졌다가 병이 깊어 미쳐서 날뛴 뒤 끝에 죽는 사례가 빈번했다. 매독은 치유가 지난하여 인육이나 수은을 먹어야 효과가 있다는 민간 요법이 헛소문으로 돌아 사람 잡어먹은 경우도 있고, 수은 먹고 중독되어 더 큰 화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매음굴 가까이 사니 모두 그런 것만 보이는군요?”

이성신이 야료를 부리듯이 박금계를 대했다. 너는 이제 끝났어, 하는 비아냥이 그 표정에 묻어나고 있었다.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음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법의 나라면 예법의 나라답게 왕부터 배꼽 밑을 잘 관리해야지. 매양 치마폭에서 그 모양으로 사니 나라 꼴이 이 모양 아닌가.”

박금계가 엄하게 꾸짖었다. 왕이란 자가 마음 꼴리는대로 여인네를 불러들여 성병이나 옮기는 것이 온당하냐는 생각이었다. 오살을 당하고, 육시(戮屍:죽은 사람의 시신을 묘에서 파내어 머리를 베고, 팔?다리?몸을 6조각으로 다시 참형을 가하는 형)를 당할 말이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고래로 왕 치고 피부병을 앓지 않는 자가 없는데, 그것이 모두 황음병에서 유래된 것이란 말이오.”

그는 어의로 참여했다가 기밀을 누설한 죄로 죽었던 집안 사람의 말을 듣고 이같은 사실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유린당하고 비운의 여인으로 전락한 여인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분이 나는 것이다. 권력은 착하고 선한 여인네들을 아작내고도 뻔뻔스럽게 모든 책임을 여인에게 돌린다. 박금계는 권력이 망하는 것은 여인네들을 천인 취급한 데서 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쟁보다 더 나쁜 것이 여인들을 짓밟는 풍토올시다.”

이성신이 이 사람, 돌아버렸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충신도 따라 일어섰다. 사립 밖으로 나오자 이성신이 말했다.

“저걸 고대로 고변해버려?”

“안될 일이오.” 정충신이 짧게 대답했다. “노망을 했거나 몽상가일 따름이오.”

그들은 각기 헤어졌다. 박금계의 말이 뇌리에 계속 맴돌았으나 정충신은 털어버렸다. 착잡한 마음으로 며칠을 걸었다. 과천-오산-평택을 지나 천안 삼거리에 이르렀다. 남쪽의 차령산맥을 넘어 공주-금강 노선을 타면 전라도 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종자(從者)에게 일렀다.

“서산으로 가자.”

1633년 6월 13일, 정충신은 해미를 거쳐 서산 지곡에 도착했다. 사패지의 완만한 정상에 오르자 임야는 질펀한 숲이었다. 숲 아래에는 조그만 전답이 있었고, 관리인이 이 전답을 벌어먹으며 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눈을 돌려 서편쪽을 바라보니 서해 바다가 펼쳐졌다. 그 사이 섬과 섬이 다정하게 서로 어루만지듯 이웃하고 있었으나 멀리 시선을 주니 눈이 시릴 정도의 수평선이 전개되었다. 풍수지리상 명당이었다. 이괄의 조상이 대대로 선영으로 두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멸문지화가 되었다. 처자식은 물론,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들과 그 자식들, 친족들과 처족들, 사돈네 팔촌까지 싸그리 도륙을 당했다. 참으로 잔인한 보복이었다. 한 때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고, 집안 대대로 사대문 안 명문가로 세도를 부렸던 그의 집안은 도발 하나로 집안의 개미새끼 한 마리 온전치 못하고 도살되었다. 정충신은 저절로 시가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나라가 망한 뒤 오백 년 도읍지(고려의 수도 개성)를 돌아보니 산과 강은 옛날과 같은데, 사람들은 간 데 없고, 지난 세월이 꼭 꿈인 것 같다고 읊은 길재의 생각이 정충신의 생각과도 같았다. 개경에 가서 고려 전성기가 꿈처럼 허무해졌음을 안타깝게 읊은 것은 지곡의 산세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사패지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으리라. 옛 명성이 되살아나도록 기를 받아 한 역할을 하리라.”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종자에게 명했다.

“그러면 고향으로 가자.”

“여기서 눌러 사시지 않으시고요?”

“조상님들의 선영을 찾고, 고향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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