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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2)

기사승인 2020.06.23  17: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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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12)

6부 5장 귀향

“내 상세히 설명해드리지요. 왕건의 훈요십조 8조에는 ‘차현(車峴) 이남의 공주강 밖은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차현 이남 공주강외’라는 건 이백 리 밖 멀리 떨어진 전라도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현 남쪽 공주강 바깥쪽이라고 하여 공주강 유역은 물론 오송-부강-청주일대의 강역을 일컫지요. 다시 말해 ‘차현 이남 공주강외’라면, 공주 강북(江北)의 북공주 지역과 청주-오송-부강 연안인 미호천-합강-금강(공주강) 권역입니다. 바로 옛 궁예의 근거지이지요. 궁예는 철원에 도읍을 옮기면서 청주 인사들을 대거 이동시켰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자신의 동조세력이었기 때문이지요.”

“그것과 훈요십조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연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왕건의 고려 건국 후 일어난 반란들은 모두 친궁예 세력들에 의한 것이었다. 친궁예 노선을 걸었던 청주 사람들과 공직 장군이 궁예의 친위세력이었다. 공직은 궁예 사후 왕건에게 투항해 대상(大相)에 임명되었고, 백성군(白城郡:현 경기도 안성)을 녹읍(祿邑:신라 및 고려 때 관료에게 직무의 대가로 지급한 논밭)으로 받았다.

왕건이 국호를 ‘고려’라 칭하고 세를 확장해나가는데도 궁예 지원세력인 청주인들의 저항은 컸다. 왕건 암살조가 생겨날 정도였다.

왕건은 정신적 지주이자, 왕건의 삼한통일을 예견한 전라도 영암 출신의 도선국사의 지도를 받고 있었고, 처가이자 자식들의 고향인 나주 호족은 물론 전라도 인재들의 지원을 받아 건국의 기초를 다졌다. 왕건 다음의 2대 왕으로 등극한 혜종도 출생지가 나주이고, 혜종의 어머니 나주오씨(장화와후) 친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흔들리는 왕권을 다졌다.

곡성 출신 신숭겸은 사지에서 왕건을 결정적으로 구했다. 신숭겸은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자신을 희생해 왕건을 살린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점술과 예지력을 가진 왕건의 신료 최지몽도 영암 출신이었다. 왕건 집권기의 두뇌들은 모두 나주 호족 출신들이거나 전라도 인물들인 것이다. 따라서 훈요 10조에서 ‘차령 이남 공주강외’의 전라도 땅 운운은 얼토당토 않는 날조이자 어거지였다. 왕건이 전라도를 은혜의 땅으로 고마워할 수는 있어도 ‘배역의 땅’이라고 할 근거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왕건의 고려 건국 시기, 청주 지역의 잇따른 반란은 나주 호족들의 사병들에 의해 제압되기도 했다. 공주강외 청주권 세력은 궁예 집권기에 특권을 누렸던 세력이었으며, 왕건의 고려 건국 초기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된 것을 기화로 왕건에게 반란을 일으키거나 후백제로 투항해서 왕건을 공격했다. 그래서 왕건은 ‘공주강외 배역의 땅’이라고 낙인찍었던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지역 패권을 가지고 이것을 가지고 이용할 것이오. 엉뚱하게 배역의 땅이니, 아니니 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왜곡시키는 놈이 나올 것이에요. 대비해야 합니다.”

정충신은 전라도 땅을 생각해보았다. 차령산맥 밑으로 약 이백 리 떨어진 곳에 노령산맥이 흘러가고 있다. 노령산맥이 가로막고 있는데 차령의 지세가 미친다고? 지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인정스님이 말했다.

“차령산맥은 예로부터 서북지역의 낭림산맥 구월산과 함께 지방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불만을 갖거나 이상을 꿈꾸는 자들이 숨어들어가 그중에는 혁명을 꿈꾸는 자도 있고, 일부는 산적이 된 경우도 있지요. 이들이 출몰해 관아와 조정을 위협하니 배역의 땅이라는 편견을 갖고, 차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현 본줄기는 한때 궁예의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려 왕건은 공주강외 미호천 인근에서 궁예와 피터지는 혈전을 벌인 원한으로 이 고장 사람들을 경계하며 배척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운영할 때 ‘차현 이남 공주강외 사람을 등용하지 말란 말’이 성립될 수 있지요. 전라도와는 거리상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누군가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입니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왕건은 나주 호족의 지원으로 건국했고, 전라도 영암출신 왕사인 도선국사의 자문을 받아 건국했으며, 적지에서의 절대 위기에서 전라도인 신숭겸의 죽음으로 대신 살아난 인물입니다. 왕건은 제2의 전라도인입니다. 그런 그가 전라도를 배역의 땅이라고 한다고? 미친놈들의 수작이지요.”

“왕건은 개경(개성) 사람이지요? 그런데 왜 나주까지 내려갔습니까.”

정충신이 물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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