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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일동중 교장의 남도일보 화요세평-청죽골 대숲에서

기사승인 2020.07.06  17: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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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골 대숲에서

김홍식(일동중 교장/광주국·공립중등교장회장)

김홍식 일동중 교장

남도의 들녘에서 모내기가 한창일 때면 청죽골 대숲에서는 소리 없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야무진 껍질로 중무장한 죽순들이 앞다투어 힘차게 솟아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어제 해질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불쑥 솟아난 죽순의 모습을 보면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놀라움이 절로 앞선다.

죽순은 그 모습 자체부터 어떤 식물의 새싹이나 새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힘과 기운이 넘쳐난다. 한없이 여리고 고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막 솟아난 그 순간부터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비장한 결기마저 느껴진다. 연한 빛의 분죽보다 왕대죽순이 더욱 그렇다. 검은색과 붉은 기운이 동시에 감도는 진한 갈색 차림은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며칠 전에 존경하는 은사님 한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동향이면서 동시에 교직의 대선배님이기도 한 분이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전화통화를 하며 제자를 걱정하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운명으로 치부하고 말기에는 참으로 아쉽고 허망하기 그지없다. 부음 소식을 듣고 황망한 마음과 함께 문득 선생님의 손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대나무회초리가 먼저 떠올랐다. 그것은 철부지 어린 제자들을 바른길로 교육하고 인도했던 선생님의 상징이다. 가끔 선생님의 회초리가 이유 없이 그리워지는 것은 단순히 지난 시절에 대한 막연한 향수만은 아닐 터. 회초리가 사라진 교단에서 어린 시절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제자 사랑은 빛바랜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따끔한 감각으로 살아있다.

흔히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따가운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올곧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이런 정치인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정치 수준과 품격이 한 단계 높아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공자도 한마디로 ‘정치는 바름(政治 正也)’이라 규정하지 않았던가?

민심의 소리 또한 청청한 대숲에서 울려 나오는 대숲소리와도 같다. 우리 사회의 정치인이나 사회적인 리더들은 이런 소리를 무섭고 크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소리에 무감각하다면 곤란하다. 자신의 처지와 입장이 뒤바뀌었다고 해서 과거와 다르게 말하고 이율배반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철저한 자기부정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자신에게 소신이나 철학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증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정치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스스로를 지키는 대나무회초리 하나씩을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솟아나기는 해도 대나무는 바르고 정직하다. 처음부터 다 자란 성체의 몸통 크기로 태어나서 평생 그렇게 산다. 자신이 타고난 그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애써 키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나무가 속이 텅 비어있으면서도 곧게 서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성정이 곧고 강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형성되어 있는 매듭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매듭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사람의 성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계마다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결핍 없이 공급받고 그 성장의 시기를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구김살 없는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우후죽순이라더니 비가 그치고 난 뒤에 솟아나는 죽순의 모습에서 힘차게 성장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흐뭇하게 읽혀지기도 한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들 힘들어한다. 살아가면서 힘이 빠지고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에 대숲으로 달려가 한창 솟아나는 죽순의 기운을 느껴보라. 이런저런 사정으로 위축된 자신과 의연하게 결별할 수 있는 힘을 얼마쯤 충전할 수 있을 테니까.

전쟁 통에 아버지는 집 뒤편의 대숲 덕분에 불과 몇 미터 뒤에서 쫓아오는 살수(殺手)의 총알을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은혜로운 대숲을 보며 자란 나, 죽순의 기상과 대숲의 넘치는 푸르름, 그리고 바름을 오롯이 배우겠다고 하면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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