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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3)

기사승인 2020.07.08  17: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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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3)

6부 5장 귀향

정충신이 오위도총부에 나가 신임 도총관으로서 사열을 받는데 선전관이 급히 달려와 입궐하라고 알렸다. 궁궐에는 왕은 고뿔 중이라 자리에 없고, 대신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 대사헌 김상헌, 이조판서 최명길과 얼굴은 알지만 직책을 모르는 중신들이 심각한 얼굴로 둘러앉아 있었다.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은 김상헌이었다.

“그래, 중국 대륙에서는 명의 몰락과 후금 흥기라는 왕조 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사실이오?”

김상헌이 최명길에게 물었다. 김상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를 내는 표정이었다. 그래야 권위를 인정받는 듯 그는 평소에도 늘 엄숙하고 화를 낸 표정을 했다.

“그렇소이다. 누르하치가 죽은 이후 그 아들 홍타이지가 대청(大淸)이란 나라를 건국한다는 소식입니다.”

김상헌이 큼 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명나라 대신 후금이 중국 대륙을 장악한다는 것에 심히 불쾌하다는 태도였다. 사실 그는 면발이 서지 않았다. 칠팔 년 전 김상헌은 사은진주사(謝恩陳奏使)로 명에 파견되었으나 분란만 일으키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 가도(?島)에 주둔하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던 모문룡과 관련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명 조정에 갔는데, 상황을 잘 몰라 엉터리 보고를 하고는 망신을 사고 돌아왔다. 이어서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다시 명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했으나 일거에 거절당했다. 명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도리어 조선군 파병을 요청받는, 말하자면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돌아온 것이었다.

김상헌이 돌아와서 하는 일은 후금과의 화의를 끊을 것과, 전쟁불사론을 지피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조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려는 추숭논의(追崇論議)가 있을 때 이를 반대했다. 반정공신 이귀와의 갈등 때문에 이귀가 가는 길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당당했는데 그것은 그의 가대가 대대로 문반의 대표적 집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조부와 선친, 자식들과 조카들이 판서, 정승, 대참찬을 지냈거나 현재도 중책을 맡고 있었다. 거기다 그는 형조, 예조, 공조, 우참찬, 대사간, 대사헌, 부제학 등 모든 중직에 있었기 때문에 세력이 많았고, 따라서 그의 위력은 어디에 있건 막강했다. 그러나 군무에 관한 한 오판과 실책을 거듭했다. 명에 파병을 요청하러 파견되었지만 헛물만 켜고 돌아오고, 결과적으로 정묘호란을 막지 못했다.

“명을 부수는 후금이 대청으로 개국한다고 했나? 그런 오랑캐를 내버려둘 수 없지. 군비 확보와 군사시설을 확충해야 하오. 이런 때는 주전론이라야지 주화론(主和論)을 펼 수 없소. 명을 부수는 나라는 우리의 원수요. 그런 오랑캐 나라에 자문(咨文)까지 보내 우리의 체면과 법통을 짓뭉개는 자가 있소!”

김상헌이 최명길을 노려보았다. 최명길이 받았다.

“여진족에 대해서는 정충신 도총관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사십년 동안 북방 변경에서 국방을 수호했으며, 누구보다 북방 민족의 성향과 군사 시설과 무기를 잘 압니다.”

“그래서 불러들였군? 그러면 말해보시오.”

정충신이 나섰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후금은 누르하치란 자가 예전 금나라 계승 의지를 표명하기 위하여 ‘아이신 구룬’, 즉 ‘금나라’로 건국했지요. 그리고 사르후 전투 등에서 승전하여 요동 지역을 석권하고, 해서여진의 예허부 등 제 여진족을 통합하면서 중국 동북 지역과 몽골을 삼켰습니다. 그런데 연경(베이징)으로 들어가는 영원성 전투에서 원숭환이 지휘하는 명군에게 패하고 몇달 뒤 병사했습니다.”

“그때 명이 기회를 잡았어야 하는데...”

한 중신이 입맛을 쩝 다시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누르하치 사후 여러 버이러(패륵) 중 네번째 버이러인 8남 홍타이지가 2남 다이샨과 싸우지 않고 화합해 칸(한)의 지위를 계승한 뒤, 동북쪽으로는 다구르와 북쪽으로는 몽골, 서쪽으로는 요서지역으로 팽창하면서 후금세력을 키워나가고, 정묘호란 때 조선 정벌로 대국의 기운을 키운 뒤 대청이란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조선 정벌이 후금에게 기회였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 조선을 엿보고 있습니다. 중국 대륙을 접수하는 후금 질서에 조선 사신들이 응하지 않자, 조선 정복을 재추진하고 있습니다. 조선 조정이 향명배금과 대후금 선전포고 교서를 팔도에 내린 것을 보고. 그것을 빌미로 또 전쟁을 일으킬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2년후 쯤 병자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병자년에 호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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