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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5)

기사승인 2020.07.12  17: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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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5)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이상을 좇는 젊은이들은 군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인조는 암군과 혼군이었다. 우유부단한 지도력은 또다시 외세 침략을 불러들이고, 끝내 망국의 길로 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군, 지금 왜나라를 보십시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쥐새끼 같은 자가 나라를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양코백이들을 불러들여 신식 화포를 개발하고, 농기구 등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농산물 수확을 늘리고 있습니다. 쌀 한 섬이 병사 열명을 감당한다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해양 진출을 위해 목철선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우리 백성들이 그 일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들을 데려와 우리가 무기를 개발하고, 농사법을 개발해야지요. 지금 시대는 맹자왈공자왈로 해결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산을 움직이는 것은 공자왈맹자왈이 아니라 한 자루의 삽입니다. 특공결사대를 구성해 그들을 데려오고자 합니다. 정 장수 나리는 일찍이 유격 기습전에 능하지 않았습니까.”

“당장 호란에 대비해야 할 것이야.” 정충신이 엄중하게 말했다.

“호란이든, 왜란이든, 좌우지간 혁신을 단행하지 않으면 명나라, 후금, 왜, 3국에게 당합니다. 그런데도 꿈쩍하지 않으니 한심합니다.”

“꿈쩍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중이지.” 옆의 선전관이 받았다.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가.”

“나리, 저희는 최명길 대감을 따르는 젊은이들입니다. 지금 조정 대신들은 최명길 대감과 정충신 장수 나리를 분리시키려 합니다. 어떻게든 갈라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최 대감 곁에 세가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최 대감은 생각이 진취적이지만 근본적으로 기득권 안에 있습니다. 보폭이 어정쩡합니다. 온건노선은 덜미를 잡히기 십상입니다. 미적거리다 역습을 당하고 말지요. 그럴 때 따르는 후진들이 희생을 강요답합니다. 그 혼자 당하면 몰라도 후진과 가족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나리께서 직접 나서시면 적극 따르겠습니다. 최 대감을 업고 한번 흔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굴기라는 것이 중국대륙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이 너무 진지했으므로 정충신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영웅이냐, 역도냐의 갈림길이다. 그렇지만 때가 임박했다고 하더라도 세가 있어야 한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김선박이 불안했던지 명토박듯 말했다.

“나리께서 우리를 밀고하시거나 딴 맘을 잡수시면 나리가 먼저 당하십니다. 우리 밑에는 비밀 세포가 있습니다.”

“비겁한 놈들, 내가 그렇게 비루해보이더냐? 이놈들아, 나는 나의 노쇠를 탄식하고 있을 뿐이다.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고, 귀양살이로 손발마저 잘린 신세다. 행동하기엔 너무 늦었단 말이다. 그것이 아쉽다. 변화해야 나라가 산다는 것을 모르는 줄 아느냐?”

“나리. 저희가 나리를 주목하는 것은 오염된 조정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조정 내에 있으면 짙게 오염되나 옅게 오염되나 정도의 차이일 뿐, 초록이 동색입니다.”

“취한 듯이 말하지 말라. 내가 조정을 모른다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세상을 바꾸자고 할 것 같으면 대신들은 외세, 하다못해 왜놈까지도 끌어들여 박살내버릴 것이다. 명분론으로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자기들의 기득권이 빼앗기면 마누라 겁탈한 왜적까지도 끌어들이는 자들이다. 백성을 제압하기 위해라면 별 짓도 다하는 놈들이야. 그렇게 사대가 체화된 종자들이다. 고상한 놈들이라고 허세를 부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삿된 놈들이다. 연년세세 기득권 빼앗기지 않으려고 방어벽을 치고, 그런데도 대들면 온갖 음해, 이간질, 분열책동으로 자기 아성을 지킨다. 군림하며 차별과 편견을 부적으로 달고 다니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너희가 제압할 수 있단 말이더냐?”

김선박이 듣더니 답답한 듯 단박에 독한 밀주를 한사발 들이켰다. 그는 본래 근본없는 자식이었다. 아비가 반역죄에 몰려 가족이 모두 노비로 팔려나갔는데, 그는 어찌어찌 있는 집으로 팔려갔다. 주인 대감 자식들의 글읽는 소리를 귓전으로 듣고 자란 것이 어느날 그들보다 실력이 월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놈 생김새부터가 예사롭지 않더니 과연 신통하군. 한 인물 하거나 중죄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를 할 놈이다. 좋은 머리를 썩힐 수 없다.”

지켜본 대감이 그를 서자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후 대감의 자식이란 이름으로 응시해 문과 급제를 한 것인데, 서자는 아무리 용을 써도 상것일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승급 인사에서 탈락했다.

지금 그는 선전관으로서 누구나 기피하는 죄인 물고 트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의금부 사령들도 물고를 트지만 선전관도 멀리 가서 직접 죄인을 잡아들여 문초하고 물고를 튼 뒤 의금부나 포도청으로 넘겼다. 이 직을 수행하는 김선박은 꼭 자신의 형제 주리를 트는 것 같아서 유쾌하지 못했다. 늘 불만을 품고 살았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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