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7)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정충신이 최명길과 함께 뭉친다는 것은 비주류로서 궁지로 몰릴 수 있다. 일단 세도정치, 붕당정치의 일원이 되면 처절하게 싸우게 되고, 그 결과 영광을 얻거나 희생물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러나 끝내는 비참하게 사라진다. 정치적 불안정은 종당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나라의 기둥뿌리까지 뒤흔든다. 이것이 붕당정치의 속성이자 한계다. 구인후는 정충신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그를 조정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게 하고 싶었다.

1634년 6월, 정충신이 마침내 포도대장에 임명되어 승정원에 나아가 절부(관찰사, 병사, 수사, 대장 등이 부임할 때 왕이 내려주던 절과 부월. 절은 手旗이며 부월은 도끼를 형상화한 것으로 생살권을 상징)를 받고 도총부에 출근했다. 그는 도총관과 포도대장을 겸임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명나라 사신 노유영이 벽제관에 도착하여 조서(詔書:임금의 명령문서나 조칙)를 뜯어보기 위한 수수료를 얼마 주겠느냐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점잖은 접반사는 정중한 예의와 값비싼 비단으로써 접대했으나 더 높은 예관이 들어오라면서 사신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는 안주에서부터 소란을 피웠다. 안주로부터 이런 전통문이 왔다.

-명나라 사신이 안주목영에서 베푼 연회에 참석한 뒤 거나하게 취해서는 놋그릇과 수저, 젓가락 등의 물품을 모조리 쓸어갔다. 목영은 뒷탈이 염려스러워 쓴 마음으로 모두 감당했다.

이런 자가 벽제관에 와서 또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명나라의 말로가 환히 보였다. 기강해이는 물론 관원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멋대로 발라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나라의 말기 현상이 분명해보였다. 정충신이 벽제관의 관원을 호출했다.

“조서의 내용이란 것은 보지 않아도 빤하다. 조정에서 올린 공주의 혼례를 승인한다는 것과, 왕의 죽은 아버지를 대원군으로 추존해달라는 따위의 청원을 들어주는 것일 것이다.”

사실 그따위 것은 승인받아도 좋고 안받아도 무방한 것이다. 그런데 신하들이 바락바락 승인받아야 한다고 우기고, 승인받으면 자신의 공적이나 되는 양 유세를 떨었다. 자기 뒤에 대국이 있다고 뻐기는데, 이것을 자기 출세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대신 명나라는 이것을 한껏 즐기면서 내심으로는 조선국을 조롱한다.

“당장 벽제관으로 나가보자.”

“나리, 이것은 포도청이나 도총부의 소관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노무 새끼야, 포도청, 도총부 관할이 아닌 것이 어디 있어? 할 일을 찾자면 모두 해당돼. 일을 안하는 것이 문제지. 조선에 들어온 그 자는 잡범일 뿐이야. 가자.”

그런 자들이 뻗대는 것은 예관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되도않는 주장을 해도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굽신거리고, 재물을 바치는 그것. 그래서 으름장 놓으면서 선물 단위를 높이고, 여벌로 취흥에 여색까지 즐긴다. 그렇게 버릇을 잘못 들인 것이다. 마침 박석고개에서 사신을 만나고 오는 예관과 마주쳤다. 예관은 득의만면해서 정충신에게 뻐기듯이 말했다.

“도총관 나리, 값을 물어보고 흥정하여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니 사신이 입경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안돼, 이놈아!” 정충신이 호통을 쳤다. “물건으로 흥청하는 사신놈이 세상에 어디 있더냐? 아무리 명나라가 망해서 체통없는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아니다. 이렇게 그자들을 사기꾼을 만든 건 접반사나 예관 니놈들 때문이야. 당장 가서 물품을 회수하라.”

예관이 주저하자 포도청 관원에게 포박하도록 하고 벽제관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명의 사신 노유영은 기생을 끼고 대낮부터 대취해 있었다.

“네, 이놈!”

정충신이 그의 앞에 턱 버티고 서서 고함을 질렀다. 노유영이 반은 웃고, 반은 놀라면서 주섬주섬 옷을 갖춰 입었다. 그 사이 기생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옆방으로 물러났다.

“니가 사신으로 왔느냐, 도적으로 왔느냐.”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은지라 노유영이 당황해 하면서도 곧 큰소리로 받았다.

“네 이놈, 대국의 사신을 이렇게 접대해도 되느냐. 무뢰하지 않느냐?”

“너에게 바친 보물은 명나라 황제 폐하께 올릴 물품이다. 그런데 예관을 닦달해 네놈이 빼앗아? 니놈이 황제 폐하냐? 황제폐하에게 목이 달아나겠느냐, 아니면 당장 보물을 내놓겠느냐!”

그리고는 사신의 멱살을 쥐어잡았다. 캑캑 숨을 헐떡이던 그가 소리쳤다.

“너의 군왕에게 이를 것이다.”

실제로 연락병이 당장 왕실로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했다. 사대부들이 먼저 놀라면서 방방 뛰었다.

“이런 못된 놈이 있나! 어쩌려고 국왕을 배알하러 오신 대국의 사신을 모욕하는가. 저 죽으려고 환장했구먼? 당장 정충신을 잡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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