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딸들이 전하는 ‘엄마의 기억들…’
갤러리생각상자 ‘13인의 엄마이야기’
15일부터 8월 12일까지 기획초대전
광주·서울 활동 여성작가들 참여
회화·설치·음악으로 엄마 되살려
엄마 품처럼 따뜻함 넘친 사회 희망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주홍 작 ‘무등 엄마’

지난 4월 중순 광주서 거주하는 5명의 40·50대 여성이 만났다. 화가와 직장인인 이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사실상 ‘집콕’하던 이들은 수다라도 하면서 답답함을 털어내고자 모였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그들은 자연스레 ‘엄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의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딸의 이야기,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의 상실감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딸, 평생 식당을 해서 자식을 키우고 그릇만 남겨두고 가신 사연, 보기만해도 그리워지는 엄마의 물건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풀리듯 엄마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각자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던 이들은 ‘엄마는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구나’라고 깨닫는다. 또 작금의 각박한 사회 풍토를 안타까워하며 ‘엄마 품처럼 따뜻한 세상’을 희망한다. 모두 엄마의 딸이고, 현재 엄마가 딸인 이들은 엄마의 마음으로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품어주자고 공감한다. ‘13인의 엄마 이야기’ 전시는 이렇게 출발했다.

이선영 작 ‘사랑한다’

갤러리생각상자(광주 동구 남문로 628)는 15일부터 8월 12일까지 기획초대전 ‘13인의 엄마 이야기’를 갖는다. 이 전시에는 광주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성작가 13명이 엄마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작가는 나선희, 노정숙, 남궁윤, 류미숙, 승지나, 심명자, 윤미경, 이선영, 전혜옥, 정정임, 조미화, 주라영, 주홍씨다.

작가들은 자신의 전공을 살린 그림, 동화, 편지, 조각, 설치 작품, 음악으로 엄마 이야기를 표현한다. 작품에는 딸이 본 엄마, 엄마가 된 딸, 엄마가 주신 것들, 엄마의 유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 엄마의 기억들이 다양하게 담겼다. 작가들은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엄마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재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원로 화가 조미화 작가는 어린 시절 양림동에서 살던 때 엄마 모습을 그림으로 소환한다. 특히 그는 결혼할 때 보낸 엄마(친정어머니)가 시댁에 보낸 사주단자도 함께 전시한다. 이선영 작가는 얼마전 작고한 어머니 유품인 두루마기를 이용한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주라영 작가는 흘러내리는 조각상을 통해 끝없었던 엄마의 희생을 기억한다.

류미숙 작가는 평생 식당을 운영한 엄마가 평소 쓰던 식당 그릇에 엄마의 꿈이자 자신의 꿈을 담아냈다. 노정숙 작가는 엄마가 직접 만든 수예와 옷 등 유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노 작가는 작품 준비를 위해 엄마가 돌아가신 뒤 10년 만에 찾은 엄마집(전남 함평)을 찾았는데 다락방에서 엄마의 유품들을 발견하곤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윤미경 작 ‘엄마 그리고 나’

아나운서 출신인 나선희 작가는 치매로 고생한 엄마와 함께한 생활을 떠올리며 엄마가 쓰던 물건들을 전시한다. 윤미경 작가는 엄마와 자신의 초상화 등을 화폭에 담았다. 주홍 작가는 무등산을 엄마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주라영 작가는 ‘인연-우리엄마’ 작품을 통해 온 생을 다 바쳐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 작가의 엄마, 자신의 몸이 녹아 흘러내리는지도 모르고 희생하신 엄마의 모습을 추상 조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음악가로 활동 중인 승지나 작가는 딸(은혜인)이 쓴 편지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들려준다. 이외 작가들도 각자의 전공과 표현 방식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의 따뜻함을 전한다.

류미숙 작 ‘엄마의 밥상’
승지나 작가가 딸과 함께 직접 만든 곡을 연주하는 모습.

전시개막에 앞서 참여작가들은 14일 갤러리생각상자에서 작품 디스플레이를 마친 뒤 ‘엄마 수다’라는 개막 행사를 열어 전시를 축하했다. 개막행사에서 작가들은 엄마에게, 딸에게 직접 쓴 편지들을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승지나 작가는 엄마에 대한 곡을 딸과 함께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전시 참여작가이자 갤러리생각상자 관장인 주홍 작가는 “중년 여성들이 수다를 떨다가 엄마의 딸이자, 엄마가 된 딸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면서 “작가들은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자기반성을 하게되고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세상을 노래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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