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2)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사간원 지사가 그렇게 말하는 데야 달리 따질 수 없었다. 정충신은 자리를 물러나왔다. 종로를 순찰중인데 수상한 자를 발견했다. 들것에 커다란 물건을 헌 누더기를 씌워서 두 장정이 메고 가는데 무거웠던지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번갈아 멨다. 시체를 떠메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곡도 아닌 것 같은데 짐꾼은 낑낑거렸다. 정충신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포교에게 들것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오도록 지시했다. 포교가 달려가 살피더니 돌아왔다.

“누더기 속에 사람이 숨어있습니다. 누이의 병이 위독한데 간호할 사람이 없어서 오라비가 친정 집으로 데리고 간다고 합니다.”

“계속 따라붙어 동태를 살피라.”

포교와 포졸들에게 변복해 따르도록 이르고 그는 저만치 떨어져서 따라갔다. 들것을 뒤따르는 자들이 연방 누더기 안을 손으로 밀어넣으며 히히덕거렸다. 일행은 서대문을 지나 모화관 뒤편 초가에 이르러 들것을 내려놓았다. 집안에서 남녀 4-5인이 나와 껄껄거리면서 들것을 안으로 메고 들어갔다. 포교가 돌아와서 다시 정충신에게 보고했다.

“장물과 여인을 실었습니다.”

“그 집을 포위하라.”

정충신이 명령하고, 직접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는 벌써부터 술판이 벌어진 듯 왁자지껄하니 소란스러웠다. 여자들도 끼어있었다. 정충신이 들이닥치자 일당들이 뒤꼍으로 튀었다. 정충신이 지키고 섰다가 하나씩 쇠도리깨로 후려치니 모두가 쓰러졌다.

“모두 포박하라.”

순식간에 십여명이 굴비두름처럼 오라에 묶였다.

“너희놈들 도적떼로구나.”

“나리, 그것이 아닙니다. 소인들은 양민들이옵니다.”

“귀신은 속일지라도 나는 못속인다. 누더기 속에 숨겨온 것은 지명수배된 여자로 변복한 팽수란 놈 아니냐. 포졸들 눈을 속이려고 하는 짓이고, 재물도 숨겨왔던 것 아니냐.”

들것을 뒤지니 과연 비단 수십 필과 진주, 금, 은, 밀화(호박 보석의 일종) 등 장물과 스무 근은 되어보이는 아편도 나왔다. 왈패들과 여자들이 왁자지껄한 것도 아편을 먹고 희희낙락 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재물들은 어디서 났느냐.”

한 놈이 답했다.

“판서를 지낸 양반네들 집 좀 털었시다. 나라에 내는 국세는 수확량의 1할도 안내지만 관리들이 착취한 것은 3-4할이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가로챘습니다. 장물을 장물아비들이 가로챈 것이 나쁩니까.”

“이놈 보아라. 맹랑한 놈이군.”

“맹랑한 놈이 아닙니다요. 법은 문서상으로 있을 뿐, 백성을 조지고 약탈한 관리들은 잡지도 않습니다. 관병이 가져갈 것을 사병이 가로채 나리들께 바칩니다. 그것을 빼앗는 것이 죄입니까요?”

정충신은 도적떼가 훔쳐온 것을 모두 회수해 쌀과 보리로 바꿔 가난한 사람들에게 풀었다. 그리고 도둑질을 했어도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도둑떼 중 남자 도둑은 세작으로 쓰고, 여자들은 다모(茶母:관청의 식모 노릇을 하던 천비)로 삼아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몇 달이 지나자 민심이 안정되고 도성은 평온해졌다.

“새 포도대장 나리가 오더니 세상이 맑아지네. 공평하게 하니 그런다는구먼.”

“양반 나리라는 새끼들이 행정권, 사법권을 쥐고 아전이 작성한 문서를 받아 돈을 빼앗는데, 그런 것이 사라졌어.”

사실 아전이 작성해 올리는 문서는 사건 자체의 공정성보다 재물의 양에 따라 달리 기록되었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이 양형의 기준이 된 것이다. 돈없어 자식 잃거나 마누라 빼앗긴 백성들이 야밤중 지나가는 아전놈들을 습격해 목숨을 빼앗는 것도 그런 불만의 반영이었다. 그들 뒤에 숨은 양반은 다친 자가 없었다.

정충신은 조선의 관리야말로 나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둘러 포도청 복무 준칙을 새로 만들었다. 부정하게 돈을 받아먹은 자는 그 열 배를 물렸다. 이유없이 백성을 붙잡아 물고를 튼 자는 손가락을 잘랐다. 계집을 건드린 자는 샅을 뭉갰다. 엄격하게 다스리자 불평이 끓어올랐으나 어느 순간부터 맑아졌다. 어느날 선전관이 달려와 정충신 앞에서 궁궐의 첩서를 낭독했다.

“포도대장 정충신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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