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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6)

기사승인 2020.08.10  17: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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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6)
6부 7장 병자호란 전야

정충신이 말을 이었다.

명 황제에게 보낸 밀서는 이랬다.

-조선의 군사력이 미약해서 도움이 안된다, 균형자로 서있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명에 파병하는 것을 꺼려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는 임진왜란을 도운 부모국을 배신하는 역도의 짓으로서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광해의 이름만 안들어갔을 뿐, 바로 광해를 치라는 밀서였다. 명나라는 이 고자질을 근거로 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선이 후금, 일본과 내통하고 있으며, 후금군 가운데 조선인 3000여 명이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되돌리지 않으면 응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재조지은(再造之恩:망해가는 것을 도와준 은혜)’의 은총을 임금이 망치고 있다는 신료들의 이간책에 광해는 도리없이 중국땅 깊숙이 우리 군사를 파병했다. 이들의 상당수가 후금으로 투항한 얼마 후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반정의 명분이 ‘친명배금’이었던만큼 친금을 주장했던 주화파는 주류 척화파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았다.

명나라와 거리를 두라고 조선을 압박한 후금은 상황이 틀어진 것을 보고 조선 공격의 빌미를 잡았고, 조선으로서는 기회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최명길은 폐모살제(廢母殺弟)의 광해를 비판하긴 했으나, 그의 ‘관형향배외교(형세에 따라 판단, 즉 균형외교)’는 받아들였다. 균형 외교정책은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 아쉬움을 두서없이 말하자 정충신이 물었다.

“지천, 왜 결정적인 때 나서지 않았소? 균형외교를 적극 설파해야 하지 않았소?”

“네, 아우의 세계관이 거기까지였습니다. 모호한 위치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벌 출신으로서 기득권의 편에 서서 평생 살아왔고, 그래서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니 사유의 폭이 제한되었지요. 솔직히 그 이상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혁명을 꿈꾸어도 우물 속의 파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최명길은 인조반정-이괄의 난 과정에서도 주류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반정의 결과는 자리다툼으로 변질되더군요. 담론은 사라지고 피 터지는 논공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느날 김류가 느닷없이 “이괄이 반역을 일으킬 사람이 아니다”라고 변호했다. 이귀와 최명길이 한결같이 놀랐다.

“아니, 이괄을 잡자고 앞장선 사람이 김 공 아니오? 그런데 이괄이 반역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씀하다니요?”

그런 것 때문에 거사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반정을 하자고 해놓고는 정작 그 시간 약속장소에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세가 불리하니 비겁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았지만, 알고 보니 이괄과 내통한 것인가?

“다 이유가 있었구만?”

“이괄과 내통했다는 말은 모함이오!”

김류가 이괄 편을 든 듯한 행동을 보인 것은 사실 사사로운 이유 때문이었다. 이귀·이시백 부자, 최명길이 공을 독식하려고 하자 심술을 부린 것이다. 김류와 이귀는 사사건건 경쟁자였다. 국사를 논할 때 이런 사사로움이 일을 그르쳤다. 나라를 위한 거창한 명분은 자리다툼으로 효력을 잃었다.

이괄이 아들 이전, 측근 기자헌 등을 잡아가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뒤이어 체포하러 온 금부도사 심대립 일행을 목 베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조정은 이괄과 내통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그의 친인척과 측근들을 모조리 잡아죽였다.

반란을 일으킨 자는 역모를 더 두려워하는 법이다. 광해군을 뒤엎은 새 조정은 정치적 기반이 약해 조그만 사건이 나도 깜짝깜짝 놀라 의심분자를 아작냈다. 이때 출세지향 아첨배들이 고변하는 풍조가 생겼다. 조그만 실수도 커다란 음모로 꾸며 고발했다. 불과 달포만에 여러 건의 역모사건이 접수되어 의금부와 선전관실, 포도청이 사람 잡는 일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밀고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이가 안좋거나 원한이 있는 사람까지 제보했다. 이렇게해서 억울하게 죽거나 갇힌 사람이 기백 명에 달했다.

나라의 동량으로 써먹어야 할 인재들이 수도 없이 사라졌다. 사고의 차이를 대립의 도구로 삼아 죽고 죽이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태도. 그것은 논어가 가르치는 대도정치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장 깊게 배운 지식층이 모범적으로 배반해버린다. 자리다툼 하나에 배움이 쓸모없게 된 것일까. 최명길은 그런 천박성이 한없이 슬펐다.

-국가의 힘은 사람인데, 여차하면 인재를 수수 모가지 자르듯 베어버렸으니 나라가 기운을 차릴 수가 있나. 생각해보니 반대파도 필요한 것을. 왜 그리 극단적이었을까. 나라 융성의 가치 대신 사적 이익이라는 전제 위에 사람 목숨을 날려버린다. 그로인해 상호 복수극으로 나라가 헤어나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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