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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기고-신정향 광주보훈청 제대군인지원센터

기사승인 2020.08.10  17: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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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기고-신정향 광주보훈청 제대군인지원센터
청렴, 원칙과 정의
신정향(광주보훈청 제대군인지원센터)

 

우리 전통사회의 공직자 청렴의 기준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말이 있다. 고위공직자가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四不)와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三拒)를 칭하는 말이다. 사불(四不)은 ‘부업을 하지 않을 것’, ‘땅을 사지 않을 것’, ‘집을 늘리지 않을 것’, ‘재일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을 것’이고, 삼거(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거절’,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거절’, ‘경조사의 부조 거절’이다.

조선시대 정조 때 청송부사 정붕은 영의정 성희안이 청송의 명산물인 꿀과 잣을 보내달라는 부탁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으니 부사된 자가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자 영의정이 그에게 사과했다.

영조 때 호조 서리를 지낸 김수팽은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 공문서 결재를 미루자 대청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었다. 그러고는 마당에 내려와 죽을 죄를 지었으나 결재부터 해달라고 했고, 판서도 그의 죄를 묻지 못했다.

연산군 때 풍기군수 윤석보가 처자를 고향에 두고 혼자 부임하게 되자 궁색한 살림살이를 견디다 못한 식구들이 집안의 물건을 팔아 밭을 샀는데, 이를 안 윤석보가 “관직에 올라 국록을 받으면서 전에 없던 땅을 장만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하며 즉시 밭을 무르게 했다.


연안 부사 기건은 연안에서 붕어가 유명했으나 재임 6년 동안 붕어를 입에도 대지 않았고, 3년간 제주 목사로 있을 때에는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 속 수많은 청렴 이야기를 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579년 서른다섯살인 이순신이 종8품 훈련원봉사로 있을 때 정5품 병조정랑 서익의 인사청탁을 거절하고 그 일로 군관으로 좌천되었으나, 이순신의 강직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사건이 되었다. 1580년 인사청탁을 거절하고 죄천되었다가 1년 만에 파격승진해 종4품 발포만호로 있을 때에는 직속상관 전라좌수사 성박이 객사 뜰 오동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드려할 때 발포만호 이순신은 관청의 뜰에 있는 오동나무는 관청의 것이므로 함부로 베어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좌천됐다가 파격승진을 한 경우 자리보전을 위해 상사의 눈치를 볼 법한데 청렴한 공직자인 이순신은 타협하지 않았다.

또한 첫 번째 백의종군 후 낙향했다가 마흔다섯에 어렵게 복직해 근무했을 때 정여립 반란사건으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정여립과 연루되면 공범으로 몰리던 시절에는, 전라도부사 조대중이 부안 기생을 데리고 울며 작별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정여립의 죽음소식을 듣고 슬퍼 운 것이라고 세간에 알려지고 조대중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와중에 의금부도사 금오랑이 이순신과 조대중이 주고받은 서신을 발견하고 이순이이 반란사건에 연루될까 염려돼 이순신에게 편지를 빼드릴까 묻는다. 그런데 이순신은 이미 수색물 속에 들어있는 것을 사사로이 빼내버리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며 호의를 거절한다.

역사 속에서 이 고지식한 선조들의 이야기가 세월을 이어가며 변함없이 깊은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왜일까? 또 공직자로서 인생을 살다 갔지만 오늘날 우리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리더십의 주인공으로 가장 먼저 이순신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 앉아있는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고 빼앗길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희망한다. 문제는 자리를 지키거나 얻는 방식이다. 청렴과 부패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공직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청탁이나 유혹이 많이 찾아온다. 사람인지라 윗분의 부탁이나 명령을 거절하기 힘들고 좋은 제안일 때는 한 번쯤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옳은 선택 앞에서 왜 주저하게 되는 걸까? ‘사회생활하면서 이 정도 융통성은 필요해.’ ‘나만 깨끗하면 뭐해?’ ‘독불장군처럼 튀고 싶지 않아’ ‘이러다 상사 눈밖에 나서 승진도 못하고 짐싸야 하는 거 아냐?’ ‘청렴하다고 누가 알아주나?’ 이런저런 핑계로 스스로 용인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현실에서 신념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에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공직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타협을 하다 보면 그 논리가 백만 가지로 늘어나고 이상한 논리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타협에 굴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공인으로서 공정하게 공공의 일을 수호하자.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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