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48)

6부 7장 병자호란 전야

영산강과 황룡강의 분기점에서부터 광주천과 영산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물은 깨끗하고 물고기가 많았다. 그곳에서 천렵하던 일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헛것이 보이는 듯 아닌 듯 아련하게 소년 시절의 모습이 다가오고 있었다. 헛소리를 하면 넋이 나갔다는 뜻인데, 아들 빙이 어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극락강의 메기 매운탕은 먼 길이라서 가져오기 어렵고, 다만 여름철로 접어드니 염장 젓갈인 고향의 새우젓과 깡다리 젓이 있구만이요.”

“그러면 되었다. 보리가 나는 때는 깡다리 젓이 최고지. 법성포와 임자도, 해제반도 사이의 칠산에서 나는 것이 으뜸이다. 보리밥 한그릇과 깡다리젓 가져와라.”

고춧가루를 잔뜩 넣은 짜디 짠 젓갈에 땀이 날 정도로 보리밥 한그릇을 비벼먹은 뒤 정충신이 빙에게 물었다.

“삼남 지방은 지금 가뭄이 극심하다지?”

“그렇습니다. 석달째 가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노복을 풀어주어라.”

“네? 관아에서 보내준 노복입니다.”

“조선의 가뭄은 차원이 다르다. 일단 가뭄이 오면 현재의 수리 시설로는 채비가 불가하다. 결국 노비들이 도랑을 치고, 샘을 파고, 물을 길러 쩍쩍 벌어진 논과 밭에 물을 주는데, 그것이 어떻게 바닥에 기별이 가겠느냐. 농민은 1작이라도 놓치면 다음작을 할 씨앗까지 먹는다. 세금 내고 나면 먹을 것이 없는데, 씨앗까지 먹으니 내일을 장담하겠느냐. 한 품이라도 덜게 풀어주어라. 오래 된 생각이다.”

가뭄이 들어도 하층민이 당하고, 홍수가 나도 하층민이 당하는 것이 이들의 숙명이다. 참으로 불평등한 구조다. 조선은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노비제를 운용하고 있다. 이민족도 아닌 동족을 수백년 동안 노비로 부리고, 또 세습시켰다. 벼슬한 사람이라도 반역의 무리에 들면 그 가족은 천민으로 전락하고, 아내가 천출이면 남자의 지체가 있어도 그 자손은 천민이 된다. 이래저래 천민은 숫자가 늘어나 인구의 5할을 차지했다. 극소수의 양반계급을 위한 천민의 나라가 되었다.

중국이나 일본도 노비가 없지 않았으나 중국의 경우, 송나라 때 법으로 철폐됐고,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사라졌다. 일부 지방에 따라 잔존했으나 그것은 채무 관계나 경제적 형편으로 벌어지는 사적 영역에 속했고, 국가 차원에서는 노비제가 운영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사회는 양반층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노동력으로 모두 제공된다. 삯을 제대로 받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두 끼 밥을 얻어먹는 것으로 노임을 대신한다.

“내가 젊은 여진족장 다이샨 패륵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다이샨이 몽골 서부지역을 점령했을 때, 한 몽골 관리가 노비제 철폐를 건의했다. 다이샨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적이라도 일리가 있으면 들어준다. 위압적이지 않다. 우리는 야만족이라고만 조롱하지 말고 그런 내면을 살펴야 한다. 나의 독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면 안된다. 조선은 고려 이후의 노예제를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강화하면서 ‘천한 무리가 양인이 되도록 허락한다면 나라를 어지럽게 하여 사직이 위태롭게 된다’고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강제했다. 천민 때문에 나라가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 때문에 위태롭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정충신이 선사포 첨사로 있을 때, 길무산이라는 젊은이가 군대에 들어왔다.

”소인은 면천하려고 군에 자원 입대했습니다.“

아버지가 관아에 도전하다 붙들려 곤장독으로 죽고, 어머니는 양반집 첩으로 끌려가고, 여동생은 기방으로 흘러들어갔다. 길무산은 부랑아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다 면천해준다는 말을 듣고 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군대가 부족한 병졸을 채우기 위한 거짓으로 유인했을 뿐, 면천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산은 아비의 혁명성을 닮아 시대를 고민했고, 모순에 저항하며 역린을 꿈꾸었다. 정충신이 그의 행동이 이상해서 그를 따로 불러들였다.

”불만이 있느냐.“

”네. 세상이 불공평해서요.“

”아비가 장독으로 죽었다고? 어떤 사람이더냐.“

”나주가 고향이신 길자, 삼자, 봉자입니다.“

”길삼봉?“

순간 정충신이 놀랐다. 길삼봉이라면 그가 소년시절, 권율 목사의 장계를 들고 의주까지 달려갈 때 그를 이끌어주던 청년 아니던가. 평양성 싸움에서 적의 총을 맞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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