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부의 편중에 대한 아이러니

윤영선((사)경제문화공동체 더함 이사장)

최근 “노동이 변하고 있다”, “노동 없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마도 사람들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비대면 사업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생각처럼 팬더믹 이후에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동 방식은 변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지 않고 오히려 노동에 더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경우, ‘70년대 오일쇼크 기간 동안 최상위 5%계층의 소득비중은 매우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IT버블 붕괴 이후 전체 소득의 30%를 넘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로 IT버블을 기점으로 상위와 하위 계층 간 소득 격차가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즉 경제위기에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의 효과가 사회 전반에 고루 퍼지지 못하고 소수 집단, 특히 주식이나 금융 자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에게 집중되면서 부의 격차는 더 커지게 되었다. 아마도 팬더믹 사태 이후에도 과거의 사례처럼 경제정책의 효과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부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고,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삶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흐름을 살펴보면 노동 여건이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들어 노동시간이 단축되었고, 노동 환경이 개선되고 있으며, 비물질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기술 발전에 따른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만으로 팬더믹 이후의 우리의 삶을 예측한다면, 노동 방식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러한 현상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분명히 노동시간은 단축되었지만, 생존을 위한 노동 기간은 더 연장되고 있다. 그리고 IT기술이나 AI의 발달로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작 사람들은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을 해야 하는 사회가 곧 공장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왜 우리는 기술과 노동 환경이 개선됨에도 불구하고 더 노동에 종속될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소유 형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부의 격차가 큰 상태에서 정부가 재정이나 통화를 확대하더라도 그 화폐의 대부분은 자산을 소유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아이러니하게 경제 위기는 부자들의 재산 증식 기회가 된다. 이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주기적으로 경기 위축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정부는 경기회복을 위해 통화와 재정을 확대하지만, 그 경제적 효과는 자산을 소유한 소수에게 집중된다. 그래서 경제위기에 부자는 더 많은 화폐를 소유하게 되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져서 노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은 재분배를 통한 빈부의 격차 해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경제 위기마다 정부가 추진했던 수많은 정책은 오히려 부의 격차를 고착화한다. 이유는 소유 때문이다. 돈은 실물과 자본을 통해서 경제 내부로 스며드는데, 이것들은 누군가의 소유물이다. 결국 정부의 막대한 예산은 실물 또는 자본을 소유한 사람에게 흘러간다. 그들에게 “위기는 곧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의 효과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먼저 소유 형태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는 케인스의 주장처럼 정부 정책은 사회 평균소비성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과거 사례가 증명하듯이 경제위기 이후 부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특히 신용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정부의 경제효과는 금융자산을 많이 소유한 자에게 집중된다. 반면, 기업의 투자는 미래에 대한 기대함수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가 낮은 상태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산을 소유한 자에게는 재산 증식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노동자는 경기침체와 경제정책 이후에 발생할 물가 상승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철저한 예방책을 세우고 경제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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