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28> 담양 홍주송씨 청심헌공파 청심헌종가

기사승인 2020.08.27  19:09:28

공유
ad51
ad53

<28> 담양 홍주송씨(洪州宋氏) 청심헌공파 청심헌종가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청심헌종가 입구의 무월마을 정자와 보호수, 목탁바위

물염정처럼 맑게 지켜온 절의정신
고려 충신 송계의 홍주송씨
세종 종친과 겹사돈 명문가
정치격변 휘말리며 지킨 충절
왜란에 호남 지킨 의병 부자
전통 체험으로 문화 계승해

전남 화순군 백아산 줄기에 있는 무월마을은 홍주송씨의 세거지로서 농촌체험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전통 생활의 멋을 잘 보존했던 송씨마을은 현대를 사는 후손들에게 선인들의 지혜와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배우게 한다. 충청도 홍성을 본관으로 하는 홍주송씨의 청심헌공파가 19세를 이어 지켜온 지혜와 가문 내력을 살펴본다.

홍주송씨 집성촌 무월마을 전경

◇두문동72현 송계가 시조

홍주송씨는 이성계의 조선개국에 불참하며 불사이군 충절 지켜 두문동에 은둔한 ‘72현’ 충신 중 고려말 문하시중을 지낸 송계(?~?)를 시조로 추모한다. 그가 충청도 홍주(현재 홍성)에 낙향하여 홍주를 본관으로 하는 송씨가 세대를 잇고 있다. 송계의 손자 송평은 세조 대에 조지서별제와 세자익위사 익위를 지내고, 처가인 고성채씨가 세거하던 담양에 입향한 홍주송씨 중시조다.
중시조 송평(?~?)은 둘째딸을 양녕대군의 손자 이사성과 혼인시키고, 아들 송기손을 효령대군의 손녀와 혼인시켜 왕실종친과 겹사돈을 맺었다. 송평의 사위와 며느리가 세종대왕 형제 가문 사람으로서 재종남매인 셈이다. 이러한 혼맥은 홍주송씨를 명문가로 입증했지만 정치격변에 휘말리는 원인을 제공했다. 송기손의 손윗동서가 갑자사화의 발고자이며 중종반정에서 참살된 임사홍이었다. 송기손의 장남 송준의 장인인 이인형은 갑자사화에 부관참시 당했으며, 또다른 차남 송숙의 장인인 최영한은 사헌부 장령으로 갑자사화 때 궁궐 앞에 대죄하다 굶어 죽었다. 송기손의 외손자 이찬은 말한마디로서 모반사건에 연루되고 능지처참 됐고, 다른 외손자 이서 형제들은 관노가 됐다.
 

홍주송씨 청심헌종가가 있는 무월마을 입구

◇동복현감 송구가 청심헌 종가 열어

송기손은 남평현감을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문중 기반을 갖췄고, 세 아들 송준, 송숙, 송구 대에서 이요당공파, 우유당공파, 청심헌공파 등으로 분파했다. 사헌부감찰을 지낸 송준(1477~1549)의 둘째 딸이 류희춘(1513~1577)과 혼인한 조선여류지식인 송덕봉(1521~1578)이다.
송구(1483~1550)는 화순, 임피, 동복현감을 거치면서 청심헌공파 청심헌종가를 열었다. 동복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화순 동복의 절경에 물염정을 짓고, 기묘사화로 유배 온 최산두(1483~1536)와 더불어 시회를 즐겼다고 한다. 최산두는 물염정 상류의 풍경을 적벽이라 이름 붙였다고 알려졌으며, 유희춘, 김인후 등 후학을 양성한 기묘명현이다. 수많은 명사들의 시문에 등장하는 물염정은 청심헌종가의 자랑이다.
송구의 장남 송정순(1528~1596)은 사헌부감찰, 예조정랑, 경상도사를 역임했다. 그는 물염정을 사위 나무송에게 물려줘 현재까지 외손 나씨가 관리하고 있다. 그 동생 송정황(1532~1577)은 김인후의 문인으로 홍문관정자, 전라도사 등을 역임했고, 주자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기대승의 저술 ‘주자문록’의 발문을 지은 학자다.

홍주송씨 세거지 표지석
추원재

◇의병장 송제민 해광집목판 문화재 지정

송정황의 아들 송제민(1549~1602)이 이지함에게 배웠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산룡, 양산숙과 함께 김천일을 맹주로 의병을 일으켰다. 조헌, 고경명과 의병 연대했으며, 근왕과 호남 방어의 전략을 위해 각지로 격문을 내고 김덕령과 함께 활약했다. 송제민은 운암서원에 배향되고, 해광집 발간을 위한 목판 54매가 지난 2020년 7월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됐다.
송제민의 아들 송타(1567~1597)는 고경명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압송되던 중 조선 포로들을 규합해 왜군을 무찌르고 순절했다.
5세 송상인은 이괄의 난에 의병을 일으킨 충의사로서 담양 대덕 무월마을로 종가를 이거했다. 무월마을에서 청심헌공파 19세에 이르기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왔다. 지금은 종택 유지보다도 마을과 화합해 무월마을을 잘 가꿔서 체험으로 인기 있는 농촌마을로 발전시켰다. 가훈은 성애경신(誠愛敬信)이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무월마을 작은박물관

물염정 전경 / 화순군 제공

=<홍주송씨 청심헌공파 청심헌종가 제공 물염정 축정 원운 한시>=

★ 물염정을 짓고서 ★   청심헌 송구(1482~ 1551) 

수간모옥결동고(數間茅屋結東皐)

두어 칸 초가집을 동쪽 언덕에 지었으니

문항의연사사동(門巷依然似謝陶)

마을어귀 의연하여 흡사 사안과 도잠이 사는 곳

강우야청어정습(江雨夜漁艇濕)

강에 내리던 비 밤에 그치니 고깃배는 젖어 있고

동운조산옥봉고(洞雲朝散玉峰高)

산골짝 구름이 아침에 걷히니 옥 같은 산봉우리 드높네.

동수낙엽소홍율(童收落葉燒紅栗)

아이들은 낙엽 긁어모아 붉은 밤을 굽고

처적황화범백료(妻摘黃花泛白醪)

아내는 누런 국화꽃 따서 막걸리에 띄우네.

임하조지여차락(林下早知如此樂)

한적한 전원의 삶 이렇게 즐거운 줄 알았더라면

청포신세기증로(靑袍身豈曾勞)

미관말직 지난 세월 어찌 수고롭게 했으리오.

 

이 시는 청심헌 송구께서 물염정을 축정하고 칠언시로 원운을 지어 현판한 것이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54
ad55

인기기사

ad52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default_nd_ad5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문화관광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ad47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