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전설따라 남도삼백리
▶꾀 많은 제자 (4·끝)기발한 꾀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이지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이 소란하다 싶더니 그 어린 제자 녀석이 어느 결에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최씨 부인을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아이고! 저놈! 새벽부터 또 뭣 하러 왔느냐!”

순간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집주인 최씨 부인이 홀연 나타나 녀석을 호통 치는 소리가 이훈장의 귀 고막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이훈장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불 속에 쥐 죽은 듯이 누워 바깥소리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우리 스승님 찾으러 왔어요. 우리 스승님 여기 계시지요?”

어린 녀석이 최씨 부인을 바라보며 당돌하게 소리쳤다.

“뭐? 뭐라? 이놈! 왜 너의 스승님이 자기 집 두고 여기서 주무시겠느냐! 어서 썩 가거라!”

성난 최씨 부인이 대뜸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사정없이 휘저으며 녀석을 쫓았다. 순간 녀석은 재빨리 최씨 부인의 부지깽이를 피해 마루로 폴짝 뛰어 오르더니 안방 문을 번쩍 열어젖히고 들어가 이불을 홱 들어올렸다. 그 이불 속에는 이훈장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벌렁 드러누워 있었다.

“여기 우리 스승님이 계신데 무슨 거짓말을 하시나요. 같이 자놓고는!”

“뭐? 뭐라!……”

간밤 자고 일어난 자신의 이부자리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 서당 이훈장이 최씨 부인의 휘둥그렇게 뜬 눈 안 가득 들어와 박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지금 귀신에 씌워 헛것을 본 것이 아닐까?’ 최씨 부인은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다시금 가다듬으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두 눈 안 가득 들어온 것은 분명 이웃 마을의 서당 이훈장이었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어떻게 이훈장이 자신의 안방 이불 속에 저렇게 벌렁 누워 있단 말인가?’ 자신은 정녕 하늘에 맹세코 지난밤을 혼자 잤는데 말이다. 최씨 부인은 순간 정신이 아득하니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질 뻔 했다. 참으로 경을 칠일이었다. 아녀자의 강직한 윤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정결한 수절 과부에 열녀문이라는 허울 좋은 굴레가 저 멀리 달아나는 찰나였다.

‘아이쿠머니나! 남우세스러워라! 이 이를 어쩐다?’

최씨 부인은 희미하게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애써 가누었다. 이제 꼼짝없이 그녀와 이훈장은 지난밤을 함께 이 방에서 지내버린 꼴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서로 사랑하며 좋아지내기에 같이 잔거라고 소문이 날 테고, 저 어린 녀석은 마을에 크게 소문을 내며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증거를 들이댈 테고, 이웃들에게 창피는 톡톡히 당할 테고, ‘아서라! 이왕에 그럴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최씨 부인은 문득 안방에서 민망한 듯 어기적거리며 말똥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훈장을 붉게 달은 얼굴로 수줍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최씨 부인의 그 상기된 얼굴과 고운 눈빛을 확인한 이훈장은 순간 휴!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멋쩍은 표정으로 ‘허허! 그놈 참! 허허! 그놈 참!’ 하는 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자꾸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어린 제자 녀석은 어떻게 최씨 부인이 그 이른 시각 집에 없을 줄을 알았을까? 그리고 제 스승을 안전하게 그녀의 안방으로 끌어들일 대담하고도 기발한 꾀를 생각해 냈던 것일까?

사실은 어제 오후 서당이 파하고 집으로 쫓겨 간 어린 녀석이 또 오후 늦게 이훈장을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헛소리를 해대는 어린 녀석을 겨우 쫓아 보내고 서당에서 홀로 쓸쓸하게 서책을 보고 있는데 어느 결 서당 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또 그 어린 녀석이 ‘스승님!’ 하고 대뜸 부르며 이훈장 옆으로 다가와 앉는 것이었다. ‘이놈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려나?’ 싶은 이훈장은 가만히 그 어린 녀석 하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허튼 소리를 하면 이번에는 아주 붙잡아 놓고 크게 혼을 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스승님, 실은 제가 듣기에 내일 새벽 그 최씨 부인이 옆 마을 친정집에 급히 쓸 물건이 있어 그것을 전해주러 잠깐 다녀온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스승님은 그 집 안방에 들어가 이부자리 속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시면 장가 드실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합니다.”

그렇게 다짐을 준 어린 녀석이 이훈장의 답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서당문밖으로 뛰어 달아나 버렸다. 최씨 부인네와 한 마을에 사는 어린 녀석은 자신의 할머니가 최씨 부인 사정을 잘 아는 누구에겐가 듣고 와서 어머니와 나누는 말을 듣고는 홀아비 제 스승 장가보낼 그런 기가 막힌 꾀를 생각해 냈던 것이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최씨 부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때는 이때다!’하고 들이닥쳤던 것이다.

빛나는 허울들만 잔뜩 쓰고 살아가는 이 고단한 세상에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멍에 같은 그 허울을 단박에 벗겨버리고, 홀아비 스승과 젊은 과부 최씨 부인의 혼례를 성사 시킨 그 어린 녀석이 참으로 대견하지 않은가! 잘나서 높이 출세했다고 온갖 교만 떠는 어느 제자보다도 실상은 그런 제자가 진짜 제자가 아니겠는가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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