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4)귀신이 곡할 노릇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허허! 소문의 실상이라는 것이 늘 그러한 것이거늘....... 혹여 저 적동이 도둑질을 실패하더라도 내 어찌 귀한 인명을 살상할까 보냐? 다시는 가난한 백성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지 못하게 크게 혼을 내 가르침을 주고 그 못된 버릇이나 고쳐주는 것이 인생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선비유생(儒生)이 해야 할 일이거늘........ 어! 어흠!’

이진사는 감나무 위에 새하얀 옷을 입고 걸터앉아있는 적동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까지 해보는 것이었다.

밤이 오고 하늘에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대문 앞에 매어놓은 황소는 풍경을 시끄럽게 달랑거리며 쇠파리에 모기가 자꾸 엉기는지 주변을 돌며 꼬리를 휘돌리더니 이제는 생풀을 되새김질하며 길게 누워있었다.

이진사는 집안의 하인들이 저녁을 내오는 것을 먹고는 술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집안 사람들에게 사랑채와 대문 앞으로는 오늘밤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지시를 내렸다. 만의 하나 다른 사람을 잘못 식별해 보고 도둑을 놓치는 실수를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어서이기도 했고 또 저 적동에게 이진사 자신을 집안사람 그 누구도 오늘밤 이 내기에 원조하지 않는다는 한 치 기울어짐 없는 공정함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달밤에 흰옷을 입고 먼 감나무 가지위에 걸터앉아있는 적동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자꾸 돋고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내기라 생각한 이진사는 무료하여 한잔 술로 먼저 자축을 하자는 것이기도 하였거니와 실상은 어리석은 무지렁이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커다랗게 난 소문과 다른 실상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했던 것이다.

늦여름 밤이 드리워지면 한낮 시끄럽게 울던 매미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철 이른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그새 풀잎 사이에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커다란 합죽선을 휘휘 휘둘러대며 간간이 엉기는 모기를 쫓아가며 서너 잔 알싸하게 술을 마시고는 감나무 사이의 흰옷을 주시하다가 가끔씩 대문 앞에 매어놓은 황소를 흘깃거리는 것이었다. 누워있던 황소가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주위를 돌며 자꾸 엉기는 모기를 쫓는지 풍경을 덜그렁덜그렁 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꼬리를 사납게 휘둘러댔다.

그러나 이진사는 저 황소보다도 감나무 위의 흰옷에 더욱 눈길이 갔다. 저 흰옷이 그대로만 있으면 적동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서산으로 달이 기울어가고 그렇게 술시말(戌時末)이나 되었을까? 감나무 위의 흰옷만을 긴 하품을 해대며 따분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진사가 무심코 대문 앞의 황소를 살피려는데 그 황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헉! 이럴 수가?’

순간 제 눈을 의심한 이진사는 재빨리 감나무 위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 흰옷은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대문 앞의 황소가 보이지 않다니? 아마 누워 있겠지?‘ 휘영청 밝은 달빛에 비추는 곳을 재차 꼼꼼히 확인해보는 이진사의 눈에 황소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이진사는 아뿔싸! 하고 짧게 비명을 내지르며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붙잡고 설마 하는 마음에 맨발로 대문 앞의 황소를 확인하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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