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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무안 나주김씨(羅州金氏) 취암공파 종가

기사승인 2020.09.10  18: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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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무안 나주김씨(羅州金氏) 취암공파 종가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천년 가문…영산강에 핀 '충절의 꽃'

우산사와 우명산 전경

신라 왕자 김운발 나주김씨 시조
광주목사 김적 취암공파 열어
김충수 대굴포전투에서 최후 맞아
김예수·최경회 진주성전투 순절
나씨부인 열녀각정려 충남 공주에 설립

영산강의 물길이 굽이쳐 흐르는 무안 몽탄에는 신라왕가의 뿌리 깊은 자부심으로 학문과 충의의 가통을 500년 이어온 나주김씨 집성촌이 있다. 무안 승달산 자락을 넘어 영산강까지 펼쳐진 기름진 옥토에 세거한 나주김씨 취암공파 종가를 찾아 호남을 지켜 국난을 이겨낸 가문의 전통과 집안 내력을 살펴본다.


◇뿌리깊은 천년 가문…충신 대제학의 후손

신라 56대 경순왕의 둘째왕자 김굉(김황)의 맏아들로 고려조 문하시중을 지낸 김운발(?~?)이 나주군에 책봉돼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나주김씨의 시조가 된다. 시조 15세인 김대경(1305~1377)은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학자로서 나주 안로현(현 영암 금정)에 유배돼 목은 이색과 많은 시문을 주고받고 조선이 개국하자 은거한 고려 충신이다.

김대경의 손자인 시조17세 김정준(?~1433)은 벼슬에 나가 해주·제주목사, 함길도관찰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역임했으며, 아들 3형제 중 김양은 해주목판관, 김증은 사온서직장으로 김종서의 사위, 김도는 계유정난의 공을 세워 금성군에 책봉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시조 21세이고 김양의 증손자인 김수남이 승사랑교수를 역임하고 무안에 입향해 승달산 자락 대사동에 터를 잡았다. 김수남의 사촌 김경석은 중군장으로 을묘왜변에 공을 세운 명묘조정국공신이다.

◇부자·형제·부부 충절…역사에 빛나

김수남의 두아들 중 김원은 이언적의 문하로 성균관직강을 역임했다. 김원에게 인수·의수·예수·지수·신수 다섯 아들과 사위 최경회가 있었는데, 김예수, 김지수, 최경회 세 사람이 공신록에 올랐고, 이중 일휴당 최경회와 김예수가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했다.

김수남의 장남인 22세 김적(1507~1579, 호는 취암)은 광주목사와 예조판서에 추증된 을묘왜변의 공신으로 무안 몽탄 사창마을에 입향해 취암공파 종가를 열었다. 김적의 다섯아들 중 장남인 23세 김충수(1538~1597)가 선무원종공신 1등 김덕수가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돼 우산사에 배향됐다. 정유재란 때 김충수와 함께 순절한 부인 금성나씨에게도 정려가 내려졌다.

◇전라도수영 있던 대굴포 항전, 부부 순절

김충수는 송재 나세찬의 손녀사위로 학문에 전념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남인 나덕원, 처족 나대용, 동생 김덕수 등과 의병을 일으켜 군량과 군수물자를 모으며 의병 전력을 증강한 공으로 온양군수에 제수됐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의병 1천명을 모아 전라도수영이 있던 대굴포에서 항전하다 중과부적으로 대굴산에서 적을 꾸짖으며 참살당하고, 부인 나씨 역시 남편을 감싸다가 적의 칼에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두 아들 김천성과 김만성이 왜군에 포로로 끌려가다가 직산전투 혼전 중 탈출하여 충청도 공주, 보령 일대 무안김씨로 살다가 300년이 지난 11대손에 와서야 뿌리를 찾게 되어 사창에 있는 ‘금성나씨정려’와 동일한 정려를 충남 공주 탄천 대학리에 세웠다.(1913)

◇육상 해운 교통요충 사창마을, 번창한 종가

우산사는 취암 김적을 배향하던 취암서원이었으나 귀암 김충수와 지암 김약화를 추모하고, 문충공 월당 김대경을 주향으로, 김원, 김덕수, 김예수, 김지수 등을 추배하면서 우산사로 변경되었다. 우산사의 뒷산인 우명산(牛鳴山, 소가 우는 형상의 산) 정상에 날아오르는 독수리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해 김적의 호가 취암이고, 우산사 입구의 거북모양 바위에서 김충수의 호를 귀암으로 칭한다.

나주김씨 취암공파 집성촌인 사창마을은 곡물을 저장했던 만큼 사창나루와 사창역이 있었던 철도와 해운 교통의 거점이었다. 종가는 한때 400여호의 번창한 마을을 유지하며 대대로 충의의 가통을 이었다. 동학접주로 일본군에 항거한 김응문 부자와 김영구, 김덕구, 김효구, 김성권 등과 항일의병장으로 일본헌병대를 습격한 김용길, 광복군 김명택 등이 의로운 선조의 정신을 계승했다. 일제에 맞서 항일 민족운동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해방 후 군정기 대법원장 김용무는 그 동생 김용현과 형제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의원 김의택(4선)과 김옥형도 사창마을이 배출했다. 후손들은 초당대학교, 한성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학문과 충의의 가통을 계승하고 있다. .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우산사 표지석
우산사 현판
옛 사창역 터. 사창마을 앞 사창나루와 사창역
나씨부인을 기리는 '금성나씨 정려'
거북바위 귀암. 김충수의 호가 귀암이다. 우명산 정상에 날아오르는 독수리 모양의 바위에서 '취암'을 차용해 김적의 호가 취암이고, 종가의 분파가 취암공파이다.
면과정. 나주김씨 세장산의 재실은 면과정, 옥녀봉 아래 명당인 나주김씨 묘역은 비선제라 부른다. 옥황상제를 모시는 옥녀가 비녀를 떨어뜨린 곳이 비선제라는 설화가 전해진다.  
김충수 공신녹권
우산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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