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6회) 소경 점쟁이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이진사는 헛웃음을 삼켜 물며 스스로의 잘못을 뒤돌아 반성해 보면서 내기에서 패배한 것을 깨끗이 승복하고는 약속대로 황소를 적동에게 주고 비록 도둑질 재주지만 적동의 비상함에 감탄해하며 말했다.

“자네의 그 재주는 참으로 신통함에 이르렀네. 내 비록 내기에는 졌지만 한마디 이르겠네. 자네가 가진 재주는 남에게 내세울 좋은 재주가 절대로 아니네. 가족들이 배를 곯지만 않는다면 탐욕을 절제하고 그 재주를 깊숙이 숨기고 살기 바라네. 자칫 잘못하면 정말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일세. 하늘이 준 재주는 자신의 사익(私益)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천하를 위해 써야하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가난한 백성의 것은 절대로 탐내서는 아니 될 것이야! 내 말 깊이 명심하게!”

“예 나리, 잘 알겠습니다.”

적동은 이진사의 말에 깊이 고개를 조아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났다. 이진사를 도둑질 내기에서 이긴 적동의 이야기가 일대에 파다하게 퍼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던 것이다.

“아따! 재밌네! 그놈 적동이 정말 기가 막힌 도둑놈이구만!”

“어허! 그러네. 밤에 흰옷을 입고 감나무에 올라가 그리 관심을 쏠려놓고는 저는 깨댕이 홀랑 벗고 내려가서 눈 번하게 뜬 그 앞에서 소를 귀신같이 도둑질해가다니 참말로 산 눈깔 빼먹을 비상한 놈이네 그려! 그런데 말이여! 인자 봉깨로 참으로 저 양반 이야기 구성지게 참 잘허네!”

이렇게 한 소절 도둑놈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또 누가 바람 따라 꼬리이어 불어오는 바람처럼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말이여? 누가 또 진기한 이야기 한 소절 보태볼 것이냐?’ 때마침 유선각 마루 뒤쪽에 걸터앉은 검은 수염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불쑥 나선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말이여! 고려 개경에 살 땐디 말이여!”

참! 그 목소리 걸걸하니 좋다. 도둑놈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왕 이야기가 나온단다. 그것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말이다.

이성계가 고려 장군으로 승승장구 명성을 날릴 때 하루는 개경 남문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남문 앞 구석에 남루한 소경 점쟁이가 하나 앉아 지나가는 사람의 점을 치고 있었다. 이성계는 그 점쟁이가 궁금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옆에 비켜서서 그 점쟁이가 어떻게 점을 치는가하고 가만히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이순이 넘은 듯 백발에 하얀 수염을 주름 가득한 얼굴 에 늘어뜨리고 눈알에 하얀 창이 들여다보였는데 초점 잃은 눈동자는 온통 검은색이라서 한눈에도 그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손때 묻은 낡은 지팡이에 의지해 앞을 분간해가는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 어떻게 남의 운명을 알아보는 점을 칠 수 있단 말인가? 마른 명태처럼 핏기 없는 깡마른 몸매에 볼 품 없는 저 눈먼 소경에게 ‘하늘은 만인에게 고루 공평하다’더니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남의 앞일은 귀신처럼 알아보는 신기한 재주를 주어 밥을 벌어먹고 생명을 연장하며 살 기회를 주었단 말인가?

이성계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소경점쟁이 하는 꼴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길을 가던 누더기차림의 비렁뱅이 거지하나가 그 앞에 풀썩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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