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1)개천의 용
그림 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 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독사에 물려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독사를 잡아먹은 그 내력과 강한 정력, 그리고 늙도록 필력이 좋아 꿈틀거리는 뱀과 같은 생동하는 필을 휘갈겨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우연한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뭇 사람들의 추측을 유발하게 하였고, 그 추측이 참으로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기에 인생살이의 행불행(幸不幸)에서 오는 오묘한 이치를 어리석은 속인은 도무지 무슨 수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예측불허의 인생사, 희비애환(喜悲哀歡)의 깊은 질곡에 그저 닫힌 입이 떡 벌어질 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삼만이 서예가로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일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는 것일 게다. 당시야 사서삼경을 읽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의당 글씨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꿈틀거리는 독사를 손에 쥐어 보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다보니 그 생동하는 동작이 몸에 익었을 게고 은연 중 휘갈겨 쓰는 필치에 그 역동하는 힘이 배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독사는 정력제라는 속설이 있듯이 독사를 생식으로 복용한 이삼만은 팔목의 기력이 넘쳐나 필치에 힘이 더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이삼만도 과거에 등과하는 방법 외에는 출세할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 그 정도 공부야 양반 자제들에게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을 것이다. 학문에 달통했다는 이름난 스승 찾아가 배우며 논어 맹자 중용 대학하는 경전을 밥만 먹으면 붙들어 안고 암송하고 베껴 써야하는 그들에게 이삼만의 학문이 어찌 감히 능가할 수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재력과 권력을 모조리 쥐고 있는 그들이 우선인 세상 아닌가! 당시 그들 양반 자제들을 공부시켜 권력과 재력을 세습시키려 학문을 연마하게 하는데 혈안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뒷받침이 좋은 뛰어난 그들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중 특이한 몇몇에 불과했을 것이고 또 대부분은 그들 권력 가진 양반들의 차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삼만 같은 경우야 학문을 연마한다고 한들 그저 한 마을에서 겨우 문자속량이나 배워 깨친 이름자 정도나 쓸 줄 아는 부류의 식자층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런 이삼만 같은 부류를 운 좋게도 용케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무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그 특별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만나면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 받을 수도 있었다. 이른바 특별한 사건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었을 때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

앉아 밥 먹으며 글을 읽고 또 꿈속에서 글을 읽고 쓰는 권력층인 양반자제들이야 항상 용이 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다반사로 용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알아주는 용들이 아니다. 그들 출신이 용이었기에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이삼만은 ‘개천의 용’이 되었는가? 그야말로 시골에서 농사일이나 하며 근근이 글자를 익혀온 이삼만이 어떻게 하여 한 지역, 한 시대의 명필로 대접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특별한 혜안을 가진 뛰어나고 사려 깊은 위대한 위인으로부터 가능하다.

여기 옥구슬이 서 말이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옥구슬인줄 몰라본다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옥구슬일 뿐이다. 돈이 되는 일, 권력이 되는 일, 이익이 되는 일에만 눈이 팔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그 이상의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세상이 한심하고 쓸쓸하고 죽은 것 같은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봄날 매화에 여름날 장미, 가을날 단풍에 겨울날 백설은 모든 눈이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든 눈들에게 보이는 것들은 그저 그럴 뿐이었다. 세속의 온갖 이해타산(利害打算)에만 젖어 살아가는 속인들의 타성(惰性)에 젖은 눈에는 일상 속에 묻혀있는 특별한 것이 절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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