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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이천서씨(利川徐氏) 절효공파 참봉공종가 <33>

기사승인 2020.10.15  19: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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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이천서씨(利川徐氏) 절효공파 참봉공종가 <33>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가훈의 효시 ‘거가10훈’ 800년 지킨 孝行 본보기

월산사 내삼문 전경

신라 아간 지낸 서신일 시조…담판으로 영토 회복한 서희 장군 후손
역사를 빛낸 효자 서릉, 절효공파 열어…연산군 횡포에 낙향한 서숭로 무안 입향
절효공 남긴 ‘거가10훈’, 한국 가훈의 효시로 재조명 돼야


전남 무안 몽탄면 승달산과 연징산 사이 한재골에는 고려 명문의 뿌리를 이어 효행의 근본을 지킨 이천서씨 종가가 있다. 주자학을 받아들였던 고려에서, 충과 효를 국시로 통치하던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달라도 ‘효’를 숭상하며 인간의 근본으로 받들어 왔던 역사가 계속됐다. 효행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가훈을 남긴 조상의 뜻을 받들고 무안에 세거하며 19세대를 이어오고 있는 이천서씨 절효공파 참봉공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 3대 재상 배출한 고려 명문가

이천서씨는 신라개국공신 서두라의 후예로 효공왕 때 아간을 지낸 서신일(822~?)을 시조로 모신다. 그가 신라 국운이 기울자 경기도 이천 효양산에 은거했는데, 고려태조 때 쌓은 서아성에 살았기 때문에 서씨의 본관이 이천이 됐다. ‘고려사 열전 서희편’에는 서신일이 사냥꾼에 쫓기는 사슴을 구해준 일로 꿈을 꾸었는데 신인이 나타나 감사와 후손의 영달을 예언했고, 그는 나이 80에 아들 서필(901~965)을 낳았으며, 서필과 그 아들 서희, 그 아들 서눌까지 3대가 재상이 되었다고 전한다.

시조 3세 서희(941~997)는 광종 때 송나라와의 국교 정상화에 공을 세우고, 성종 때 80만 대군으로 침략한 요나라 손소녕과의 담판으로 오히려 압록 이남 강동6주를 회복한 고려 명장이다. 벼슬은 태보내사령에 이르렀고 병사하여 성종 묘정에 배향됐다. 4세 서눌(?~1041)은 딸이 현종의 여섯째 왕비(원목왕후)가 돼 국구(왕의 장인 호칭)이면서 삼중대광내사령에 올랐고 그 역시 정종 묘정에 배향됐다. 6세 서공(?~1170)은 문무를 겸비해 평장사에 올랐으며, 무인을 예우한 덕망으로 무신 난의 화를 입지 않고 명문의 전통을 이었다.

◇ 고려 대표 효자, 조선조까지 백성의 귀감

11세 서릉(?~?)은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나 모친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 장성에 내려왔다. 고려사 열전 효우편에 따르면, 엄동설한에 목에 난 등창으로 위독해진 모친을 살리려면 살아있는 개구리가 필요하다는 의원의 진단에 따라, 산천을 헤맸지만 취하지 못해, 대성통곡하는 그를 보다 못한 의원이 탕약이라도 지어 시험하자며 약을 볶는데, 나무아래 솥단지로 산 개구리가 떨어지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 약을 붙여 등창이 나았고 그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한 일이라며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백성의 귀감으로 삼았고 장성 성덕마을을 식읍으로 내렸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그의 효행과 덕행을 기록하고 삼강행실도와 타와도로 감천지효를 적고 있다. 서릉을 파조로 절효공파가 장성, 무안, 순창 등에서 대를 잇고 있다.

◇ 가훈에도 효시가 있다, ‘거가10훈’

19세 서식(?~?,호는 사암)은 부모상에 6년을 시묘한 효자였고, 학행으로 경연에 뽑혀 막힘없는 강론으로 임금을 감동시켜서 진안감무에 제수됐다. 21세 서숭로(1422~1541,호는 정암)는 병조참의에 올라 이시애의 난에 전공을 세웠고, 1498년 무오사화 때 은거하여 무안 몽탄의 반월산 아래 종가로 처음 입향했다. 서숭로의 부친인 서빈창(?~?)은 효로 성균생원이 되고 원릉참봉을 역임했는데 참봉공종가의 1세가 된다. 서숭로는 무안 월산사에 배향됐고, 그 아들 서의신(1471~1544) 역시 효자이며, 후손들은 19세대를 이어 대대로 효행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가훈으로 알려진 서릉의 ‘거가10훈’(1257년)은 부식삼강(扶植三綱 삼강을 바로 세워라), 돈서오륜(焞敍五倫 오륜을 돈독히 펴라), 관이어하(寬以御下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라), 예이사상(禮以事上 윗사람은 예로서 대하라), 임상치애(臨喪致哀 상을 당하거든 슬픔을 다하라), 당제치경(當祭致敬 제사는 경건하게 모셔라), 지심이공(持心以公 마음은 항상 공평하게 가져라), 처사이의(處事以義 일처리는 정의롭게 하라), 교자이정(敎子以正 자식은 바르게 가르쳐라), 대인이서(待人以恕 다른사람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등 10가지 덕목을 담고 있다. 사암 박순이 비문을 짓고 백광훈이 글씨를 쓴 ‘서릉정려비’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됐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월산사 사당
모사재와 종택
서릉 영정. ‘고려사’에 고려 대표 효자로 기록된 서릉은 무안 몽탄의 월산사, 순창 유등의 화남사, 장성의 모암서원에 배향해 추모한다.
모효재
화남사 전경
이천서씨 절효공파 문중에 가전되는 서릉의 ‘거가10훈’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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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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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현 2020-10-26 15:11:28

    기사 감사합니다
    후손으로 조상에 대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점 아쉬웠는데 고맙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21세 서숭로 할아버지께서 '병조참의'가 아닌 '예조참의''라고 하는데 사실 확인 바랍니다삭제

    • 서해현 2020-10-26 15:06:49

      21세 서숭로(1422~1541,호는 정암)는 병조참의에 올라 이시애의 난에 전공을 세웠고, 1498년 무오사화 때 무안 몽탄의 반월산 아래 은거하면서 이천서씨 참의공종가를 열었다.

      제목에서는 참봉공 종가라고 하면서 기사에서는 '참의공 종가를 열었다'라고 합니다
      정확한 사실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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