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4화>기생 소백주 (제8회)산(山)서방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신씨 부인은 남편 병 구환 하느라 없는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겨우 두어 냥 복채를 주머니에 깊이 챙겨 담고 푸른 풀잎 돋아나는 들길을 지나 어느새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새 강남 갔던 여름 철새들이 돌아왔는지 연둣빛으로 눈을 뜨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맑은 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싱그럽게 낯을 스치고 지나는 것이었다.

나뭇잎이 새로 돋고 이름 모를 풀잎들이 땅에서 돋아나 그새 봄꽃들을 달고 방긋이 웃고 있었다. 이런 산 속에는 고사리 꺾는 사람들이며 산나물 캐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었다. 인생의 봄도 이렇게 싱그러운 것이련만 도무지 신이 나지 않는 것은 그 삶속에 탐욕이 있고 분쟁이 있고 또 아픔이 있고 병이 있고 이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신씨 부인은 산 수풀 피어나는 칙칙한 오솔길을 올라 고개 너머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고갯길을 막 내려가려는데 바로 그 옆 수풀에서 인기척이 났다. 높은 산도 아니고 또 깊은 산중도 아니어서 대낮에 호랑이나 여우같은 산짐승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무하는 사람이거나 나물 캐는 사람 혹은 인기척을 피해 달아나는 다람쥐나 산토끼려니 하고 그 쪽으로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던졌다.

그러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보았거니 하고 눈을 의심하며 멀리 산 아래 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신씨 부인이 막 발을 띠려는 순간 뒤에서 보드라운 몸을 사정없이 거머잡는 칡넝쿨 같은 우악스런 손이 있었다.

“아악!”

그것은 거친 사내의 손길이었다. 신씨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짧게 비명을 토해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 으슥한 인적 드문 산 고갯길에 더러 산 도둑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런 적은 없었던 것이다.

“누 누구야!”

신씨 부인이 사납게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보름 전 집나간 니 년의 산(山)서방을 그새 잊어 버렸느냐?”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난 너 같은 산 서방 둔 적 없다! 이놈아! 놔라!”

신씨 부인이 사내의 팔뚝에 붙잡힌 몸을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

“어허! 이년이 기억이 없나 보구나! 내가 너의 전생(前生) 서방이다!”

“그런 거 난 없다! 이놈아! 어서 이 손을 풀어라!” ?

“어허! 꽃 피는 봄날 이녁 좋고 나 좋고 벌 꽃 꿀 따는 재미를 좀 보자는데 앙탈이라니!”

사내가 신씨 부인의 허리를 더욱 옭죄며 윽박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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