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4화>기생 소백주 (16) 이정승
<제4화>기생 소백주 (16) 이정승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학이며 소나무가 그려진 여덟 폭 진기한 병풍이 방안을 빙 둘러 쳐져 있고 값나가는 붓과 먹과 벼루, 은빛 황금빛 광택이 고운 번뜩이는 장롱과 청자 백자 문양 고운 도자기, 여러 진기한 서책과 글씨 편액들이 가지런히 걸려 서실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여쁜 여동생이 임금의 빈(嬪)으로 간택되어 외척의 세도를 단단히 누리게 된 이정승은 그 힘으로 우의정 자리를 거머쥐었다고 소문이 파다했는데 각진 이마에 성질깨나 사나운 듯 눈꼬리가 위로 북 치켜 올라간 것이 첫눈에도 살진 얼굴에 탐욕이 덕지덕지 흘러넘치는 것이 참으로 거만(倨慢)한 인상이었다. 

나이를 따져보자면 이정승이 김선비 보다 열 살 쯤 더 많았다. 흡사 커다란 멧돼지 같은 몸집의 이정승은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엎드려 절을 하는 김선비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으음!……경상도 상주 땅의 김유경이라!……내 당고모할머니의 손자라 하셨는가?”

“예, 그렇사옵니다.”

김선비는 거만하게 거들먹거리며 자신을 내리 깔아보는 이정승의 오만한 눈빛을 의식하며 자신도 모르게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청탁하러 간 처지를 생각하고는 공손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챙겨간 돈 꾸러미를 이정승 앞으로 슬그머니 들이밀었다.

“그 그건…… 무슨 짐 보따리인가?”

이정승이 묵직하게 보이는 뜻밖의 짐 보따리를 보고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실은 제가 워낙 천학비재(淺學菲才)라 이제껏 글공부라고 하였으나 과거를 보는 쪽 쪽 낙방하여 어디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얻어 볼까 하고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이정승님께 약소하나마 돈 몇 냥 챙겨 왔습니다.”

요즈음 거액의 뇌물을 받고 지위 높은 권세가들이 벼슬자리를 거래한다고 나라 안에 소문이 자자했는데 특히나 외척의 세도를 단단히 누리고 있는 학식도 변변찮은 이정승이야말로 뇌물 밝히고 뒷거래 잘하기로 최고으뜸이라는 것을 조선팔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어 어흠!…… 뭘 이런 것 까지나……”

이정승이 헛기침을 하면서 김선비가 들고 간 돈 보따리를 눈어림으로 가늠해 보고는 다시 입맛을 쩝! 하고 다시며 말했다.

“아! 그래……으 으음!……그거라면 저 사랑방에 가서 며칠 묵으며 기다려보시게나!”

“아! 예! 정승나리!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정승과의 면담은 그것으로 짧게 끝이 났다. 김선비는 공손히 이정승에게 절을 하고 그 방을 물러나왔다. 

그날 밤 김선비는 이정승과 헤어져 사랑방으로 가면서 멀지 않아 어디 지방의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챙겨 주리라는 가슴 부푼 기대를 한껏 가져보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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