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26) 시운(時運)
<제4화>기생 소백주 (26) 시운(時運)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 이야기를 들은 김 선비는 무슨 진기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머릿속에 간직하고 오래도록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이정승의 집에서 사랑방 식객 노릇을 하던 삼년 동안 김 선비는 같이 지내던 여러 곳에서 올라온 선비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인생사와 세상사를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견문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혼란한 난세를 평정할 인물은 하늘이 낸다고 하더니 인생사도 모든 게 시운(時運)이 적절히 맞아야 했다. 세상에 쓸 만한 훌륭한 인물이 나오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김 선비는 오래전부터 속으로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첫째는 천운(天運)이 좋아야 했다. 조상 대대로 착한 일을 해서 덕을 많이 쌓아 인심을 얻고 좋은 명당에 들어가야 했다.

둘째는 지운(地運)이 좋아야 했다. 지운은 바로 자신이 뿌리를 박고 사는 현세의 부모의 덕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고 키울만한 학식이나 재력이 넉넉해야 했다. 학식이 없더라도 재물이 넉넉하면 훌륭한 스승을 사서 교육을 시킬 수 있었으니 그것은 부모를 잘 만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셋째는 인운(人運)이 좋아야했다. 스스로 타고난 재주와 끈기가 남들보다 월등하고 비상해야 했고 또 인품도 고매해야 했다. 천운도 지운도 좋지만 스스로 타고 난 인운이 재주도 없고 또 끈기가 남들에 비해 부족하고 성품이 모질고 악독하다면 아무래도 세상에 올바른 뜻을 펼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면 능히 천하를 평정할 인재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인재가 어느 시운(時運)을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춘삼월 호시절을 만나면 그 기운이 봄날 화초 같으나 구시월 모진 바람을 만나면 그 기운은 겨울날 얼음장 같을 것이다. 봄날에는 화사하고 위엄 있는 모란이 왕이겠으나 가을날에는 저 모진 찬바람이 왕일 것이다.

봄날의 인자한 왕 밑에서는 만백성이 꽃과 생명을 노래하겠으나 모진 찬바람 같은 포악한 왕 밑에서는 만백성은 어서 봄이 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고 인고의 시절을 버티는 폭설에 묻힌 띵띵 얼어붙은 저 보리밭의 보리이파리일 것이다.

뛰어난 영웅호걸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좋은 시절을 만나면 더욱 좋은 시절로 만들어 발전해 나갈 것이겠고 또 차가운 북풍 휘몰아치는 간악한 폭정의 시절을 만났다면 능히 그에 맞서 그것을 물리치고 사람이 살만한 새로운 세상을 활짝 열어젖힐 것이겠으나 그것이 어찌 한갓 범인(凡人)으로서야 쉬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리하여 영웅으로 타고 나지 못한 그렇고 그런 세상 사람들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흐르는 대로 그저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하여 혹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세상이 혼탁하면 혼탁한 대로 세속의 명리에 젖어 시절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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