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38)유유자적
<제4화>기생 소백주 (38)유유자적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예, 무슨 일이옵니까?
부엌에서 일하는 아낙이 말했다. “어서 저 선비님을 방으로 정중히 모셔라!”
“예! 뭐라고요?”
일하는 아낙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지위도 없어 보이는 저 허름한 선비는 그대로 여지없이 낙방을 하고 돌아갈 것으로만 여겼는데 뜻밖의 소백주의 말에 아낙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저 선비님을 방으로 정중히 모시라 하지 않았는가!”
소백주가 다시 힘주어 말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아낙이 얼른 대답하고는 김선비가 앉아 있는 마당건너 정자마루로 달려 나갔다. 자신을 한척의 배에 비유하여 대번에 압도해 버리는 비유 기발한 글귀에서 소백주는 김선비의 기량을 읽었던 것이다.
얕은 꾀로 상대를 꼬이려 하는 치기도 아니었고, 또 화려한 미사여구로 마음을 사려하는 간교함도 없었고, 더구나 별것도 아닌 주제에 쥐꼬리만큼의 제 지위나 가진 것, 혹은 재주를 내세우고 허세를 잔뜩 부리며 잘난 체하고 들며 강압하려는 그런 허장성세도 없었다.
다만 사내로서 여인에 대한 지극히 본능적인 순수한 은유만이 내재되었던 것이었다. 그저 지내온 연유나 가진 것을 묻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인간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소탈한 본성을 읽어낸 소백주는 또한 저 선비의 지나 온 내력을 알려하지도 않을 만큼 여인으로서 담대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꽃 이름을 묻지 않고도 몸을 덮쳐오는 바람처럼 꽃 또한 바람 불어오는 사연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소백주는 그 글귀에서 저만큼의 기량을 지닌 사내라면 한번 멋진 연애를 해볼 만했고 또한 부부 연을 맺고 남편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한평생 서로에게 서로의 가난한 마음을 기대고 살아도 좋은 사람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소백주는 기생이었을망정 지위나 돈다발의 크기로 사내를 고르는 세속의 영악한 여인네와는 그 급이 달라도 아주 달랐던 것이다.
일자무식 무지렁이 백성들이야 오직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성취와 확장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기에 차지한 밥그릇 크기에 따라 거기에 맞춰 짝을 고를 것이었고, 문벌 좋은 권문세가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그 문벌의 크기만큼 엇비슷한 짝을 저울질해서 골라 혼례를 치르고 살 것이겠지만 소백주는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물론 최하층민인 천한 기생 주제에 사내를 절대로 제 마음대로 고를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기생 소백주는 그 시대 여인으로서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당당하게 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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