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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함평이씨(咸平李氏) 효우공파 만호공종가 / 이건풍가옥 <40>

기사승인 2020.12.17  18: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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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함평이씨(咸平李氏) 효우공파 만호공종가 / 이건풍가옥 <40>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항일 독립운동 앞장선 호남 대표 가문

고려 신무위대장군 지낸 이언 시조
이순지 함평 입향, 가문 일으켜
‘함평 이건풍가옥’ 전남문화재자료
이명룡 사정지·승정원일기 소장

‘함평 이건풍가옥’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전남 불갑산에서 흘러내리는 함평 해보천이 고막원천으로 합류하는 곳인 나산면 초포리 넓은 들 한복판에는 함평이씨 시조를 추모하는 사산사가 있다. 이 마을은 함평이씨 집성촌이며 조선 초기 건축형태로서 ㄷ자형 팔작지붕을 그대로 간직한 ‘함평 이건풍가옥’이 있다. 일제에 항거한 호남의 대표 강골고장, 함평이 3성3평(장성·곡성·보성, 함평·남평·창평)의 영예를 이루는데 기여한 함평이씨 효우공파 만호공종가를 찾아 천년을 이어온 함평이씨의 가문 내력을 알아본다.

◇고려공신 시조따라 충신 배출

함평이씨는 고려 건국에 참여하고 신무위대장군에 오른 함풍군 이언(?~?)을 시조로 모신다. 함풍군과 모평군이 함평군으로 통합되면서 본관을 함평으로 하는 이씨의 세계가 천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함평이씨는 함평 나산 초포리 사산사에 시조를 배향해 추모하고 있다. 5세 이광봉은 고려 충숙왕 때 상호군으로 원나라 사신이되고, 삼사사를 지냈으며 벽산삼한 보국숭록대부 좌명공신으로 함풍부원군에 봉해졌다.

10세손 이춘수(?~?)가 수사를 지내고 만년에 함평에 터를 잡았다. 그의 아들 이긍(1389~1433)은 어질고 슬기로우며 한어를 잘하여 세종 때 승문원제조를 거쳐 공조우참판에 오르고, 사은부사로 북경에서 돌아오던 중 병사한 충신이다. 11세손 이종생(1423~1495)은 정직 관후한 덕장으로 무과 급제해 절충장군을 지냈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적개공신으로 함성군에 봉해졌다. 내금위장을 거쳐 부총관에 올랐다.

◇효행·학덕 높은 효우공 파조로

이긍의 형제인 이접(?~?)이 효행과 학덕이 높은 연유로 효우공이라 존대했다고 전해지며 그 손자 13세손 이순지(1458~1519)가 함평 나산 초포리 사산마을에 입향해 조부를 추모하며 효우공파를 열었다. 이순지의 형인 이순화가 만호를 역임하여 만호공종가로 부른다. 이때 지은 종택을 후손들이 지켰고 건축문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함평 이건풍가옥’으로 지정됐다.

15세손 이충실(1542~1598)은 훈련원봉사를 지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서 싸운 맹장이다. 당포와 율포 해전에 공을 세우고, 노량해전에 이순신장군이 전사하고 화살이 다해 바다에 투신, 순절했다고 전라도지에 전한다. 22세손 이홍직(1705~1796)은 전의현감, 경상우도사, 충청도사를 거쳐 사간에 이르렀으며, 세차례나 지방관의 비행을 탄핵하고, 홍국영 세도정권을 통탄하여 함평에 은거했다.

◇일제침략 맞선 항일운동 앞장

22세손 이명룡(1708~1789)이 종가를 중수해 10대째 거주하고 있다. 이명룡의 손자 이돈현(1761~1810)은 예조정랑을 지냈고, 그가 문과급제 때 환향하며 쓴 관과 일산을 가보로 보존하고 있었는데 현대에 이르러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명룡 7세인 이재형(1853~1878), 8세 이근행(1898~1964), 9세 이건풍(1919~2005) 3대 종손이 모두 함평 향교의 전교를 역임할 정도로 향촌의 미풍양속을 지키며 함평 지역사회에 공헌에 앞장섰다고 한다. 무인이었던 선조들이 나라를 구하고 향촌에서 효행과 학행으로 덕을 쌓았던 명문 집안답게 불의에 항거하며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독립운동에도 앞장선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 장성 한말항일의병으로 이칠헌, 영광장성 항일운동이 이계동이 활약했고, 기미년 함평의 3·1운동을 이끈 이계동, 이권범, 이도범, 이양범, 이인행, 이윤행, 이행록 등이 의로운 후손들이다.

종가는 무과에 급제해 관서지방 국경방비 행적을 기록한 이진문(1573~1630)의 ‘봉사부군일기’, 문과에 급제한 종가조인 이명룡의 유고문집 ‘사정지’, ‘승정원일기’ 등을 소장하고 있으나 안전보존이 어려워 지인에게 보관을 맡기고 있다고 한다. 종가는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라’는 선조의 유훈을 가훈으로 계승하고, 종부의 손맛을 통해 송어젓(납딱젓), 죽순장아찌 등 종가음식을 이어오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사산사 전경
함평이씨 시조를 모시는 사산사 제각
종택 전경
종가 사당
사산사 내삼문
남도에서 보기드문 ㄷ자형 팔작지붕 구조의 조선 전기 건축을 보존하여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함평 이건풍가옥’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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