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풍산홍씨(豊山洪氏) 창애공파 종가 <46>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종가 재발견
금계포란형 명당…한류 보존·문장가 배출
대대로 문과급제한 문사 선조들
단종 절의 지켜 남하해 나주 입향
오씨부인 한글기록 전통음식 전승
남애집·음식보 등 후속 연구 필요

귀래당. 종가 14세 종손 홍명석씨

전남 나주 남평 지석천이 굽어 흐르는 다도 풍산리에는 올곧은 가정교육으로 훌륭한 자손을 키워낸 풍산홍씨 종가가 있다. 식산의 필봉을 마주보고 대밭으로 둘러쌓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 명당’이라 알려진 도래마을에서 갖은 풍파를 이겨내며 500여년을 지켜온 풍산홍씨(豊山洪氏) 창애공파 종가의 내력을 알아본다.

◇고려 국학 직학 홍지경 시조

풍산홍씨는 고려조 고종 때 문과 장원 급제하고 국학 직학을 역임한 홍지경(?~?)을 시조로 모시며 경북 안동 풍산을 본관으로 한다. 2세 홍간(?~1304)은 문과급제해 도첨의사인, 지제고를 역임했다. 그의 아들 홍유가 충열왕 때 문과 급제해 벼슬은 대제학에 올랐다. 4세 홍연은 문과급제해 보문각대제학, 금주지사를 역임하고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5세 홍구는 고려 말 용기순위사 우령중랑장을 역임하고 경기도 고양에 정착했다. 6세 홍이(?~?)는 조선조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남평현령을 역임해 전라도 나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 아들인 7세 홍수(?~?)는 문장과 절개로 알려졌으며 성천부사를 역임하고 계유정난 이후 나주 노안에 입향했다.

◇의병장 홍민언 귀래당 짓고 후학양성

9세 홍한의(1482~1549)는 뛰어난 문학으로 건원릉참봉에 제수됐고 학포 양팽손과 도의로 교유했으며 나주 남평 도천(도래마을)에 입향했다. 세간에서 부르는 도래홍씨는 홍한의로부터 세계를 잇는 나주 풍산홍씨의 별칭이다. 그의 손자 홍민언(1537~1626)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 장군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금산으로 진격하다 남하해 남원 운봉 전투에 참전했다. 남평 지석강 전투에서는 왜적을 제압하고 포로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고 호남절의록에 기록됐다. 사복시주부에 올랐으나 계축옥사에 연루돼 귀양 후 돌아와 귀래당(나주시향토문화유산 제21호)을 짓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홍민언의 둘째 아들인 12세 홍시정(1574~1628, 호는 창애)은 선무랑 헌릉참봉에 제수됐지만 나가지 않고 창애종가를 열었다. 창애유집이 전해진다.

◇조선 양반가 요리 기록 보존

17세 홍수원(1702~1745)은 주은세고에 문집이 전해지고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됐다. 그의 부인 진원오씨가 조선후기 양반가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정리한 ‘음식보(飮食譜)’를 남겼다. 홍씨 집안 여성 교육용 책자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음식보 오복제 합부’라는 표제에 한글로 귀거래사, 음식보, 오복제, 정월 초에 하는 윷놀이 점괘, 조상의 기일 등이 기록돼 있다. 갖가지 음식 제조법은 물론 12가지 술의 제조법, 집안 초상 때 갖춰 입는 5가지 복식 등을 담고 있어 민속학 가치가 높은 자료라고 한다.

◇정조 하사한 시권도 보배

오씨부인의 엄격한 자녀교육에 관한 일화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아들들이 사서삼경을 소리내어 읽으면, 다른 방에서 듣고도 누가 어느 대목을 잘못 읽었는지 지적할 정도로 학문에도 조예가 있었다고 전한다. 아들 홍봉주(1725~1796, 호는 석애)는 문과 급제하고 벼슬은 동부승지에 오르고 석애문집을 남겼다. 홍봉주의 양아들 홍익진(1766~1801, 호는 남애)은 빈흥시(지방에서 치른 소과를 개편해 정조가 직접 출제와 채점을 실시한 시험)에 합격하고 장사랑에 제수됐다. 이때 문필구와 시권(정조가 채점한 답안지)을 하사받았다. 그는 농정에 관한 상소를 인정받아 영릉참봉에 제수됐다. 그의 부인 행주기씨는 노사 기정진의 고모로서, 후손들이 장성의 기씨 가문 학당으로 유학했다고 한다. 22세 홍규식(1871~1945)은 송사 기우만과 함께 구한말 의병 창의에 참여했다. 창애종가는 14대를 이어 가통을 계승하며 충의와 문학에 힘썼고, 주은세고, 석애문집, 남애집, 석천유고 등 2천여점의 고문집과 고문서 등을 보존하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홍민언 의병장 전적비
도래마을(도천마을) 표지석
석애집
음식보 중 일부. 삼해주 주조법, 청명주 주조법을 기록하고 있다. / 홍명석 종손 사진제공
음식보 중 일부. 가지찜, 동침이, 식혜 등을 만드는 법이 기록돼 있다. / 홍명석 종손 사진제공
홍익진 시권. 정조가 직접 채점한 기록이 남아 있다. 홍명석 종손 사진제공
홍봉주의 어머니 오씨부인이 쓴 음식보를 바탕으로 빚은 삼해주(항아리 속 용수 안쪽에 맑은 청주가 삼해주)
양벽정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