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85) 고향산천(故鄕山川)
<제4화>기생 소백주 (85) 고향산천(故鄕山川)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봄이 가면 여름, 여름이 가면 가을, 그리고 사나운 겨울이 오는 것이 세상의 길이거늘........ 아! 어찌 내 좋다고 봄에만 살 수 있으랴!’ 사랑하는 소백주를 두고 가는 김선비의 마음속에 다시금 살아나는 어여쁜 소백주에 대한 마음을 애써 지워버리면서 앞을 향해 내달렸다. 지금 고향에 가면 다 굶어 죽게 생겼다던 늙은 어머니며 처자식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렇게도 가족들이 위급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을 그리 깡그리 잊어버리고 오직 아름다운 여인네의 살 향기에 빠져 매일 고기에 흰쌀밥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살았으니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원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일 것이었다.

‘어허! 내 어찌 세상에 나와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도 못하고 또 늙은 어머니마저도 보살피지 못하고 이처럼 슬픈 고향 길을 가게 되었단 말인가!’ 김선비는 달리는 말 등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생각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김선비는 머릿속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생각의 싹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멀리 눈길을 주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들판이 그새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하게 겨울 맞을 준비를 하는 나무들 사이로 낯을 차갑게 쏘아대는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바람을 타고 차가운 하얀 눈발이 흩날릴 것이었다.

‘이 추운 바람 불어오는 겨울에 우리 식구들은 잘 있을까? 참으로 무능한 가장이로고!........’ 멀리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려 먹어도 그새 또 그 자리로 생각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말을 몰아 길을 재촉하면서 길목에선 주막에서 끼니 때 요기도 하고 말 먹이도 먹이고 또 밤이면 주막집에 들어 한 사발 술을 들이켜며 여독을 달래며 드디어 고향 마을로 들어서는 산 어귀에 김선비는 이르렀다.

이 몸과 뼈와 정신을 길러준 고향산천(故鄕山川)! 산과 산이 빙 둘러쳐진 산 고개를 넘어가면 그 아래 멀리 평야가 열리고 지금쯤 하늘 끝에 까치밥으로 감 홍시가 붉게 달려있는 고을이 있었다. 집 뒤로 높이 솟아오른 산 계곡에서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굽이쳐 흘러와 마을 앞 멀리 평야를 향해 달려가고 추수가 끝나고 아이들은 방패연, 가오리연을 만들어와 하늘 높이 날리는 것이었다. 고향 떠나기 6년 전, 김선비의 줄줄이 낳은 어린 아들들도 천자문이며 사자소학에 사서삼경 등을 배우러 서당에 다녔고 또 겨울날이면 연을 만들어 형제간에 앞 다투어 날리기도 했던 것이다. ‘어흐! 그놈들은 다 잘 있단 말인가? 어흐! 그놈의 웬수 같은 벼슬자리에 눈만 아니 멀었어도 그놈들 잘 기르며 늙은 어머니 봉양이라도 잘했을 터인데…이런 낭패가… 어흐 참!’ 마을 어귀를 들어서며 김선비는 늙은 어머니와 처자식이 건강하게 잘 있기만을 바라며 또 이런 상념에 젖어드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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