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디지털 시대 ‘일과 삶’ 어떻게 결합할까
▶리암 길릭의 ‘워크 라이프 이펙트’
광주시립미술관 비엔날레 특별전
6월 27일까지 본관 1·2전시실 등
현대미술의 거장 아시아 첫 개인전
다양한 형태와 색감 작품들 눈길

리아 길릭 작 ‘Happiness Predictions from Striatal Activity’
리암 길릭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로비에 들어서면 빨갛고 노란, 형형색색의 탁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S자 형태로 길다랗게 이어진 탁자들은 팔걸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들과 함께 비치돼 있다. 탁자와 의자는 로비와 북 라운지를 거쳐 미술관 건물의 뒤쪽까지 아우르며 이어진다. 탁자를 찬찬히 살펴보면 본래 원형으로 돼 있던 걸 절반으로 구분해 펼쳐놓은 모습이다. S자 모양의 형태들은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거나 옆으로 나란히 앉기보다는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향하며 등을 맞대고 앉을 수 있게 한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최근 개막한 리암 길릭의 ‘워크 라이프 이펙트(The Work Life Effect)’에 선보인‘Moderation Toolbox’ 작품 이다. 그리고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동그란 공 모양의 램프들이 격자 천장에 매달려 있다. 이 램프를 지붕삼아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커다랗고 밝은 색의 네온 공식들이 미술관 공간을 점령한다. 또 투명한 유리창으로 된 시립미술관 로비 외벽엔 24/7과 kiosk 등이 적힌 숫자, 글씨 그리고 직선을 이은 다양한 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이렇듯 리암 길릭은 광주시립미술관 1층 공간들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리암 길릭 작 ‘Moderation Toolbox’

‘워크 라이프 이펙트’는 세계적인 개념미술가로 평가받는 리암 길릭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지난 30년간 진전시켜온 주요 주제들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전시를 통해 이제껏 탐구해왔던 주제, 즉 생산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관심, 일의 다양한 양태들 및 동시대적 추상에 대한 끝없는 탐색을 이어간다.

광주시립미술관은 2021광주비엔날레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전시회를 마련했다. 최근 개막한 전시는 오는 6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전시공간은 제1·2전시실 전체와 미술관 로비, 북라운지 등 공공영역까지 확장해 작가가 ‘관계의 미학’에 기반 해 전개했던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지난 해 광주에서의 리서치를 통해 중외공원을 반영한 신작 또한 소개한다.

‘워크 라이프 이펙트’는 팬데믹과 디지털 시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삶’의 느린 결합에 대해 생각해보는 플랫폼이다. 전시는 우리가 새로운 생활 환경에 놓여졌을 때,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

리암 길릭 작 ‘The Work Life Effect Structure A’

할지에 대해 다중적 의미의 빛과 여러 형태를 통해서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전시는 미술관 내·외부 공간 모두를 활용한다. 특히 전시관 벽에서 발산하는 커다란 공식들이 눈길을 끈다. 이는 마치 우리 삶과 결부되어 있는 분석 데이터가 가시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도시의 밤거리에서 볼 수 있는 네온 불빛들은 인간의 행복을 계측하는 도구들로 대체하는 듯 하다.

기존의 구조물이 제거된 미술관 안에는 반(半)자율적 공간으로 작용할 두 개의 커다란 건축적 공간이 세워져 있다. 하나의 공간 안에 있는 이 두 개의 공간들은 두 개의 역설적인 측면들을 보여준다. 각각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A, B로 명명된 두 공간은 모두 상가의 정면 또는 거대한 진열장과 닮아 있다. 환하게 밝혀진 이 공간들의 파사드는 유리로 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유리의 존재는 환영일 뿐이며 관람객들은 쉽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게 인상적이다.

리암 길릭은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A’에 추상적 형태의 ‘Fins’와 ‘Horizons’ 시리즈 신작을 배치했다. 벽 거치 형태의 작품들은 가짜 천장과 격벽에 대한 그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대적 공간 구조물에 존재하는 냉각핀, 데이터 서버, 통풍구의 외형을 떠올리게 한다.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B’에는 디지털 피아노와 스노우머신으로 구성된 작품인 ‘Factories in the Snow’ (Il Tempo Postino>(2007)>가 있다. 작가가 제공한 미디어 파일을 자동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는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1974년 포르투갈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데 쓰였던 민중가요의 완벽한 재연을 시도한다.

리암 길릭 작 ‘Factories in the Snow’

이처럼 리암 길릭은 아름다우면서 색다른 형태와 색감으로 관람객들에게 파고든다. 무엇보다 예술세계는 심미성을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 인간이 ‘이미 만들어 놓은’ 사회, 정치, 경제 시스템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한다. 즉 작품과 관람자와의 관계, 인간과 사회환경, 삶과 예술 작품, 그리고 일상과 건축물, 혹은 사물간의 관계까지 폭넓게 다룬다.

영국 에일즈버리 출생으로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리암 길릭은 런던의 화이트 채플 갤러리와 파리의 팔레드 도쿄,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 할레 등 세계적인 갤러리와 전시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8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의 빈센트상과 1998년 파울 카시러 미술상(베를린)을 수상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독일관 대표작가로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로 타국 국가관을 대표하는 외국인 작가가 되기도 했다. 뉴욕 모마 구겐하임, 런던 테이트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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