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시간여행 목포로 떠나세요”
근대역사문화공간 일제 침탈 아픔 간직
국내 최초 육지면 재배지 고하도 눈길
곰솔숲이 풍기는 향기로 힐링까지 가능
서산동시화골목에서 어린시절 추억찾기

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 모습. /임문철 기자

우리는 가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온 시간들을 그리워할때가 있다. 어릴적 동네에서 놀던 친구들 모습부터, 좁고 비좁지만 정이 넘치던 골목길의 풍경, 불량식품인줄 알면서도 쭉쭉 빨아먹던 쫀득이 등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이러한 기억들은 성인이 된 후 매번 반복되는 여러 힘든 상황들을 이겨내는 자양분이 되곤 한다. 아마도 다친 마음의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일 것이다.

그렇기에 도심속에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초고층 빌딩 건물들만 잔뜩 들어서는 보는 것이 가끔은 아쉽고 허무할때가 있다. 때론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도 하다. 비록 사라지는 것이 내 소유물은 아닐지라도 나의 마음 한켠에 조심스레 저장됐던 보물 하나가 빠져 나가는 착각마저 들기도 하다. 우스운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러한 감정들은 더욱 빠르게 요동치고 세차게 밀려든다는 것. 이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다면 그 해답은 ‘전남 목포’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발의 칼날을 피한탓에 아직도 도심 속 곳곳에는 그야말로‘사람사는 냄새’나는 소중한 것들을 잔뜩 품고 있어서다 . 희미해져 가는 추억의 산물들이 다시금 짙어질 때 움츠렸던 과거로의 기억의 꽃망울도 활짝 필 터이다. <편집자주>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일부 보수를 거쳐 2006년부터 근데 역사관 별관으로 사용중이다. /임문철 기자
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 인근에 있는 방공호는 당시 일본군이 미군의 공습을 대비해 많을어 놓은 땅굴이다. /임문철 기자
일본이 한국경제를 독점하기 위해 1908년 설립한 특수 국책회사 건물인 근대역사관 2관에 설치된 내부 모습. 목포시 제공

◇슬픔과 역사 공존 ‘근대역사문화공간‘

목포 근대역사거리는 1897년 일제에 의해 개항된 목포항에서 오거리를 중심으로 ‘행정’, ‘금융’,‘무역’ 등 요소들과 관련한 근대건축물들과 일본인을 위한 ‘주거’, ‘숙박’, ‘종교’, ‘의료’, ‘학교’ 와 같은 시설들이 한데 어우러진 역사문화 공간이다.

(구)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호남은행, 동본원사 목포별원, 국도1ㆍ2호선 기점 기념비를 비롯해 일제강점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어 근대역사거리를 돌아보며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목포 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영사관)은 목포 개항 이후 1900년 12월 일본의 영사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목포 이사청, 목포부청사로 사용됐다. 광복이후에는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으로 이용됐다. 건립당시의 내ㆍ외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이 지역 최고의 근대건축물이다. 건물 뒤로는 일제강점기에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방공호가 있어 방공호 체험도 가능하다.

목포 근대역사관 2관 (구 동영척식주식회사)은 일본이 한국경제를 독점하기 위해 1908년 설립한 특수 국책회사 건물이다. 목포는 전국의 9개 동척지점 가운데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둬들이던 대규모 지점이었다. 이 건물의 일본의 신민정책을 상징적으로 증명하고 근대건축기법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과거 역사의 현장감있는 교육 공간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구)호남은행 목포지점 (현 목포문화원)은 호남부호 현준호에 의해 1929년 세워진 조선민족자본 은행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 통폐합 당하기전까지 조선인들로만 운영됐다. 광복이후 조흥은행을 거쳐 신한은행으로 사용됐고 현재 목포문화원으로 활용중이다.

목포 목화체험장 내 아이들이 실컷 뛰어다니면서 놀이를 할 수 있는 목화놀이터 모습. /목포시 제공
목화체험장 내부에 설립된 목화온실에는 목화의 생장과 수확 전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제공된다. 목포시 제공
목포 목화체험장에 과거 어머니들이 사용했던 물레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목포시 제공

◇고하도 목화정원

고하도는 1904년 국내에선 최초로 육지면(목화품종의 일종, 미국면) 재배에 성공 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1906년 면화재배장려정책이 시행되면서 목포(대의동)에 면작시험장, 방직공장 등이 설치됐다. 육지면 개량종이 개발되면서 전국 각지에 보급됐고, 육지면 재배로 목화항은 크게 발전해 목포가 전국 3대항 6대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목포는 면화와 호남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전초기지가 됐다.

현재 이곳은 시민들의 체험과 교육의 장소로 탈바꿈중이다. 목포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목화를 테마로 역사교육ㆍ문화ㆍ관광의 요소를 접목, 2018년부터 3년간 총 사업비 35억을 들여 고하도에‘목화정원 & 체험장’을 조성했다.

고하도 목화 영상제작물, 목화 관련 이야기 그래픽 등 전시, 목화관련 베틀·물레 등 기구를 전시한 ‘전시존’과 목화화분만들기, 목화머그겁 만들기 등 체험활동이 가능한 체험존도 운영하고 있다.

오두막, 나뭇잎그네, 꽃나비시소, 활차, 통나무징검다리, 통나무건너기 등 9종의 어린이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바다전망테라스, 팽나무 숲터널, 야외 피크닉, 실외정원 등 신나게 뛰어 놀수 있는 공간들이 가득하다. 입장료(체험 프로그램 참가비는 2천원 별도)가 무료란 점도 인기요인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후 수군을재건하는 과정에서 고하도 곰솔숲 나무들을 이용해 배를 건조했다. 사진은 곰솔숲 전경. /목포시 제공

◇고하도 곰솔숲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간 여행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고하도 곰솔숲을 적극 추천한다. 전남도 최우수 남도 명품 숲에 선정되기도 했던 ‘고하도 곰솔숲’은 면적만 3만㎡에 이를 만큼 크고 넓다. 해변 산책로(고하도 해상데크)가 5.7㎞에 걸쳐 조성돼 있다. 해변의 산책로를 걸으며 바다와 곰솔의 향기를 맘껏 맡을 수 있다.

곰솔은 지방에 따라 해송 또는 흑송으로 불리는데 잎이 소나무의 잎보다 억센 까닭에 곰솔, 또는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른다. 또 줄기 껍질의 색깔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고하도 곰솔숲에는 수령이 무려 500년 이상된 나무 700여 그루가 집단 자생하고 있어 웅장함에 매료된다. 과거 임진왜란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이 백의 종군 후 수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106일간 이곳 고하도에 주둔하며 군사를 훈련하고 배를 건조했는데 이때 배를 만든 재료가 이곳 곰솔이었다. 숲 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유적비와 모충각이 있어 역사적 요소도 함께 담고 있다.
 

과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추억을 다졌던 목포 서산동시화골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시화골목 안내판. /목포시 제공
서산동시화골목 입구에 과거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들만큼 추억의 물건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목포시 제공

 

 

골목길 곳곳에 아름다운 벽화그림과 시가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넉넉한 마음의 힐링을 제공하고 있다. /목포시 제공

◇서산동 시화골목

코흘리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면 서산동시화골목을 방문해 보길 바란다. 보리마당 위 목포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서산동시화골목’은 1980년대 시절에 시간이 멈춰있는 이색공간 중 한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용근로자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예로부터 햇빛이 잘들어 ‘보리 말리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 해서 보리마당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이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에 비유될 만큼 멋있다. 좁지만 정겹고, 구불구불하지만 불편하진 않았던 꼬맹이 시절 속 맘껏 웃고 뛰놀던 골목길이 쭉 이어져 있다. 특히 골목길 곳곳에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란 생각이 들만큼 예전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1987촬영지로 유명한 연희네슈퍼는 반드시 찾아가 볼 필수 코스다. 연희네슈퍼를 중심으로 옛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연희네의상실’부터 추억의 과자를 먹을 수 있는 ‘연희네세탁소’, 미숫가루, 쌍화차 등 음료를 마실수 있는 ‘연희네 다방’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방공호 입구 주변 공중화장실도 이색 장소 중 하나다. 현재도 많은 지역 예술가들이 사진촬영 등 작품활동에 나서고 있다.

목포 벽화마을 한 돌 계단이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그림으로 표현돼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목포시 제공

◇목포 벽화마을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 아래에 위치한 목포(목원동)벽화마을에는 마치 추억이란 도화지에 아름다운 색을 칠해 현재를 표현한 듯한 묘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로 넘쳐난다. 마을에 위치한 집 담벼락마다 재미난 그림부터 무엇을 의미하는 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상학적 작품들까지 눈요기꺼리가 많다.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글귀부터 책 속 명언들까지 혼재 돼 있어 그림 하나 글 하나를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옥단이길이란 푯말도 자주 볼수 있는데 옥단이는 이곳에서 실제 물지게를 나르던 실존인물이다. 벽화마을은 이 옥단이길 4.6㎞중 일부다. 이길을 쭉 걸으면 마주치는 한 오래된 성당건물이 나오는데 여기가 김우진 생가터이자 북교동 성당이라 불리는 곳이다. 연극인이자 목포 최초의 근대예술인인 김우진 선생(1897~1920년)은 근대극을 개척하고 무대에 올린 실천가로 현해탄에서 윤심덕과 함께 투신하신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성당 주변으로 김 선생의 발자취를 알수 있는 김우진 문학산실 기념석과 작품들을 볼수 있다. 목포 (구) 청년회관 건물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다. 일제 강점기 목포 청년들의 항일운동 근거지였으며 민족 운동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목포. 아름다운 추억의 산물들이 내품는 숨결을 느껴보길 바란다.

중·서부취재본부/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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