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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남도>지친 심신, 싱그러운 오월 지석천 누정 따라 힐링을…


영벽정·송석정·침수정
시를 읊거나 노래
선비 문화의 백미
수려한 풍광 감상


전남 화순에는 아름다운 가사문학과 함께한 누정(樓亭)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합쳐 이르는 말로,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지은 다락 형태의 집을 말한다.

높은 언덕이나 돌과 흙으로 만든 대 위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옛 사람들은 산과 물이 좋은 곳에 누정을 세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시를 읊거나 노래를 하며 풍류를 즐겼다.

주로 옛날 지역의 사대부나 명망가들이 풍치 좋은 누정에서 호사를 누렸다. 그래서 많은 가사문학이 누정에서 탄생했다.

싱그러운 오월 지석천을 따라 누정 여행을 하며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누정에 잠시 앉아 나뭇가지와 나뭇잎에 바스러져 내리는 햇살과 상쾌한 바람과 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에 위로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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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벽정/화순군 제공

<지석강물에 투영된 연주산 바라볼 수 있는 영벽정>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는 영벽정이 있다.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67호다. 지석천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에 자리하고 있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많은 행락객들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영벽정은 계절에 따라 변모되는 연주산의 경치를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능주팔경(영벽상천(映碧賞泉)중 하나이다. 2층의 팔작지붕에 한식골기와를 얹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이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팽손(l488년~l545년)의 제영, 신증동국여지승람(148I년~153년 신증), 김종직 (1431년~1492년)의 시로 보아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 10년(l632년)에 능주목사 정연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개수했다고 전하며 고종 9년(1872년) 화재로 소실됐다. 이듬해 고종 l0년(l873년) 목사 한치조가 중건했다. 이후 1982년, l983년에 각각 보수했으며 l988년에 해체 수리됐다.

정내에는 9개의 시문이 있다.

기단위에 주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으로 누하주를 세웠는데 원래는 목조기둥이었으나 l988년 해체 복원시 영구성을 위해 석조로 대체했다. 이 기둥위에 마루를 깔아 중층 누각형 정자를 만들었다.

마루의 사방에는 계자 난간을 돌려 장식됐고 처마밑에는 활주를 세웠다. 누상주의 기둥머리는 익공형식의 공포를 했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나 중앙부는 우물천정이 설치됐다. 지붕을 3겹으로 한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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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정/화순군 제공

<지역 정자 건축 규범 송석정>

송석정은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에 있다. 2006년 향토문화유산 제27호로 지정됐다. 지석천이 휘감아 도는 수려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송석정은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서 태어난 학포 양팽손의 증손인 양인용은 광해군이 등극한 후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유폐시키자 양인용은 이의 부당함을 간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1613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양인용은 이곳에서 시문으로 벗들고 담소하며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보냈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정자, 강물과 바위, 산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수려한 암벽과 소나무 숲속에 건립된 송석정에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 갔다. 본래 150여개의 시액(詩額)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30 개의 시액만 남아있다. 추사 김정희의 글로 알려진 ‘松石亭’ 편액과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의병장이었던 은봉(隱峰) 안방준 (1573년∼1654년)의 시액과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인 운인 송홍(雲人 宋鴻)의 시액도 있다.

정면3간, 측면 3간의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팔작지붕 정자이며, 정중앙에 1간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이는 화순 지역 정자건축의 규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송석정 입구 왼쪽은 커다란 은행나무, 오른쪽에는 수백년이 되었을 벚나무가 수호신처럼 서 있다. 송석정 안과 밖에는 펼쳐진 소나무 숲이 특히 아름답다. 코로나19 시대에 여유롭게 자연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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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정/화순군 제공

<호남지역의 정자 전형인 침수정>

침수정은 17세기에 활약했던 미수 허목, 윤선도의 문인이었던 홍경고(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정자이다.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368번지로 주소지를 따라 우봉마을에 도착하면 보이는 마을의 입구 왼쪽 산중턱에 자리한 정자이다.

1885년에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정자에는 송사(松沙) 기우만 (1846~1916)의 기문 등 총 37개의 현판이 걸려있어 많은 시인묵객이 찾았던 유서 깊은 정자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에 중재실이 있고 아궁이도 있는 등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침수(枕漱)’라는 말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촉나라의 손문이 했던 말로,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즉 검소하고 정결한 생활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겠노라는 의미가 담긴 누정 이름이다.

한때 타인의 소유로 넘어갔다가 1879년에 풍산 홍씨 후손들에 의해 다시 문중 소유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후 1885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0년대까지 유림묵객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삼신제를 올리는 등 널리 애용되었던 곳이다. 침수정 처마 안쪽으로 빼곡히 걸려있는 편액들이 걸렸다.

정자 뒤로는 오산사가 있는데 침수정은 오산사의 강당으로 쓰이고 있다. 침수정는 우봉리 앞의 넓은 벌판과 그 벌판을 적시는 지석천을 시원하게 바라보고 있어 뛰어난 풍광이 일품이다.

또한 침수정 앞 우메기 못의 맑은 냇물과 수령이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팽나무, 백일홍, 소나무와 바위들이 함께 잘 어우러져 그 운치를 더하는 곳이다.
/노정훈 기자 hun7334@namdonews.com


 

노정훈 기자  hun7334@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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