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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봉산이씨(鳳山李氏) 대종가 <58>

장성 봉산이씨(鳳山李氏) 대종가 <58>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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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 전경

성군 탄생시킨 큰 스승…왕자 사부 후손
학문 덕망 높은 이수 '중시조'
왕자·세자·국왕 된 세종의 사부
사헌부지평 이구종 정난 피해 이주
문정공실기·죽림사 보존 계승 필요


전남 장성 방장산 자락에는 이수 선생을 배향한 죽림서원이 있다. 역사 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되는 세종대왕의 통치철학과 애민정신에 영향을 준 인물이 봉산이씨 중시조 이수다. 11세 대군시절에 만나 16세부터 20세 이후 세자 시절, 그리고 국왕이 되어서도 대제학으로서 세종의 정신적 기둥이 돼 주었던 임금의 사부가 심은 이수다. 선생의 후손인 봉산이씨(鳳山李氏)가 전남 장성에 터 잡아 세거해 온 600여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경학·청렴 학행 높아 왕자 사부로
봉산이씨는 경주이씨에 뿌리를 둔 분관 성씨다. 고려 예의판서 보문각제학을 지낸 상호군 이사윤의 증손자인 이수(1374~1430, 호는 심은)가 세종으로부터 청렴결백을 높이 사 봉산 땅을 하사 받았다.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모시며 봉산을 본관으로 600여년 세계를 잇고 있다.

이수는 조선 태조 때 사마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경연 시독관에 추천됐다. 당시 태종은 성리학의 최고 권위자 양촌 권근(1352~1409)에게 세자(양녕대군) 교육을 맡기면서 왕자교육을 맡을 인물을 찾았는데, 성균관대사성 유백순이 학행 높은 이수를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세종)의 사부로 천거했다. 이수는 과거공부를 이유로 사양했지만 문과 급제 후 다시 천거돼 15~6세의 왕자들에게 대학과 시경, 주역 등을 가르쳤다.

그는 6년 후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면서 제왕수업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 서연관이 됐다. 세종의 즉위 후에도 그는 경연에 참가했고 세종이 역대의 사대문적을 모두 공부하고 주역공부를 끝낸 세종 8년에 예문관대제학에 올랐다. 세종은 문종의 세자 교육도 이수에게 맡겼다.이수는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며 세종의 문치와 국방에 힘을 더하다가 세종 12년 돌연 낙마 사고로 사망해 세종묘정에 황희, 최윤덕, 허조 등과 함께 배향됐다. 시호는 문정공이며 전남 장성 죽림서원에 주벽으로 모셔졌다.

◇정난 피해 살기 좋은 남쪽에 세거
2세 이구종(1391~1441)은 이수의 큰아들로 사헌부지평 겸 춘추관기주관을 지냈으며 광산김씨와 결혼했기에 계유정난 때 광주 평장동(현 담양 대전면)에 이주했다. 그가 지평공파를 열었다. 그의 형제 이서종(좌랑공파), 이복종(부사공파), 이길종(참봉공파) 등 4형제가 각각 분파됐다.

이구종의 손자인 4세 이증번(1432~1478)이 장성 황룡면 와룡마을(당시는 진원)로 이거했고, 그의 아들 이주(1450~1519)가 사마생원시에 급제했다. 7세 이사숙(1567~1631)은 1590년 장성 선비들과 함께 심은 이수를 제향하는 죽림사를 건립했으나 정유재란에 소실됐다. 그의 아들인 이관일(1607~?)과 손자인 이엽(1603~1661), 증손자 이석봉(1659~?)이 사마생원시에 합격해 가문을 빛낸 문인이 됐다. 이엽의 손자인 11세 이하복(1677~1742)이 청류당 변휴의 문인으로 학행이 알려졌고 장성 북이면 사산마을로 이거했다.

◇문향 장성의 자랑 죽림서원 보존
14세 이득원(1765~1842, 호는 사유당)은 부친 이응열(1720~1792)의 유지에 따라 상경해 소실된 심은 이수의 부조묘 중건을 청원 상소했다. 정조는 세종대왕 배향공신 이수에 대한 불천위 제례를 승인해 부조묘를 세우게 했다(일성록). 100여년만에 제사를 올리는 숙원을 이룬 것이다. 그가 청원을 위해 상경했을 때 당시의 명사들에게 심은 이수에 대한 글을 받았는데, 이 글들과 이수 관련 문헌들을 묶어 ‘문정공실기’ 4권을 편집하고 예문관 활자로 인쇄, 발간해 각지의 향교·서원에 배부했다. 이수의 학덕을 기리는 실기 편찬에 발맞춰 장성 유림 71명이 죽림서원 건립을 추진했다. 죽림서원은 비록 동재 서재 등 기숙시설은 갖춰지지 못했지만 강당이 있어 활발한 강학 활동으로 후학 양성에 큰 역할을 했다.

종가가 장성 죽림사에 보존한 고문서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됐다. 종가는 세종대왕이 봉산이씨 집안에 내렸다는 “경인수세 충효전가(敬仁守世 忠孝傳家)” 글을 21세대에 이르도록 가슴에 새기고, 건강·면학·정직·효친·책임·신용·후덕·위선·상경 등 가훈을 지켜 선조의 학덕과 교육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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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사 고문서1.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됐다. /장성군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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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사 고문서2.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됐다. /장성군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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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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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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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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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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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묘. 세종 묘정 배향공신 이수의 불천위 제례를 모시는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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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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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원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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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사와 문정묘로 통하는 내삼문

서정현 기자  ndpl@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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