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아라든지 당뇨라든지 심장병이라든지 전립성이라든지 성인병 없는 사람이 없고 그 가운데 절반은 귀가 어둡다. 동문모임이다. 만나는 날이 25일인데 졸업 기수가 25회라 관례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6·25는 어김없는 날인데 그날은 대개 옛날 자기의 스무 살 적에 겪은 이야기로 즐겁다. 6·25 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도 여러 번 들은 것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다시 들어도 늘 재미있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 가운데 두 친구의 첫날밤 이야기는 늘 들어도 재미있다. 그들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날만은 꼭 그 친구들을 상기하면서 흥겹게 보낸다.

한 친구는 약혼 중에 군대에 소집되어 제주도 육군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그땐 한참 전쟁 중이라 단기간 훈련하고 전선으로 배치하던 때다. 이송하기 전 부대에 따라서는 결혼한 훈련병에게 아내와의 마지막 면회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제도적인 행사가 아니고 소속 부대장의 임시조치이다 보니 숙소가 단꿈을 꾸기에는 너무 초라하였다. 임시로 설치된 마룻장위에 난장 간이변소같이 거적을 쳐놓고 거기서 부부의 밀월을 보내야 했다. 여기저기서 마룻장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내 친구도 그 거적 안에서 첫 날밤을 보내야했다. 또 한명의 친구는 전쟁 중 지리산 구례 토지면에서 의경으로 근무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첫날밤에 밤손님의 습격을 받고 혼비백산 신부 돌볼 틈도 없이 개구멍에 몸을 숨겼다. 다행히 무사하였지만은 평생 아내로부터 비겁한 남자라는 구박을 들어야 했다.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인 김난도의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군데군데 선 거름으로 읽었다. 그러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강력한 안티테제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우리의 청춘은 죽음이었다’는 관념의 덩어리였다. 우리의 청춘은 아프다는 감미로운 말로는 대표하지 못한다. 전쟁의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의 청춘은 바로 죽음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이면 어느 쪽이건 좋은 도구의 나이다. 오늘 결과적으로 미화되지만 사실은 연고에 따라 어느 한 쪽에 증발되었다. 그래서 때로 형제나 친구들 간에 총을 겨눠야 했다. 6· 25에 동창들이 만나면 60년 전 서로 반대의 입장에 있었던 것을 가끔 상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은 위대하다. 우리는 그래서 더 할 이야기가 있다.

‘70, 80년대 독재와 간난에 시달렸지만은 그러나 그때는 기회가 있었다. 한참 성장하던 참이라 아무리 술 먹고 연애하고 데모를 해도 다들 취직은 했었다. 독재와 함께 싸운다는 공동체의식도 있었고 그러나 요즘 20대는 철저하게 파편화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60년 전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위안이 되겠는가. 마치 억지로 역사책이나 읽어보라는 무책임하고 실속 없는 충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실패한 시대를 살아남은 우리에게 오늘 그 실패한 이야기가 정답고 다정하게 살아나듯이 오늘 청춘의 아픈 이야기는 어느 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아픈 오늘을 사는 청춘에게 청춘이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야담으로라도 연결되었으면 한다. 19세기 영국낭만주의 시인 셸리의 대표적인 시 가운데 사라져버린 청춘에 대한 탄식을 노래한 짧은 절창이 있다. ‘오 세계여, 오 인생이여, 오 시간이여,/ 그 마지막 계단에 올라 절규하노니/ 너의 꽃다운 청춘은 어디 갔느냐/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기쁨은 사라져간다/ 봄여름 가을 겨울 나의 가슴은 다만 슬픔 일뿐/기쁨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셸리가 탄식한 그 시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영국은 청춘이 크게 좌절한 시대를 가장 위대한 도약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도약의 주역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좌절하고 우울하였던 청춘들이었다. 생각을 바꾸면 아픔은 우리에게 계시일 수도 있다. 아픔은 꽃처럼 붉을수록 더욱 아름답다. 그것은 청춘 본연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전남대 명예교수·영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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