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창·임소연 기자의 광화문 촛불집회 취재기

성숙한 시민들 민주주의 새 역사를 쓰다

170만 인파 질서정연 ‘감탄’…1분간 소등땐 절정

서로 배려하며 청와대까지 행진…하루 2만보 걸어

시민들 걸으면서 청소까지… “세계가 찬사 보낼만”
 

지난 3일 오후 청와대로 행진하던 시민들이 서울 효자동 삼거리 분수대 앞을 가로막은 경찰 차벽 앞에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경찰 차벽 뒤로 청와대 경호실 훈련장과 북악산이 보인다. 서울/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지난 3일 오후 광화문을 돌아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시민들이 경복궁 서문 ‘영추문’ 옆길에 늘어선 모습. 이날 시민들은 1·2차에 걸쳐 청와대 포위 행진을 벌였다. /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촛불의 바다였다.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제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는 170만개의 촛불이 넘실거렸다. 촛불행렬이 쉴새 없이 밀려왔다. 촛불은 분노였다. 서울시민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외쳤다. 촛불은 감동이었다. 세월호 7시간을 규명하라는 의미를 담고 1분 동안 꺼졌다가 다시 타올랐다. 남도일보 이은창 기자와 임소연 기자의 서울 광화문 광장의 제6차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기를 소개한다.

◇청와대 100m 앞까지=KTX를 이용 오후 1시께 서울 용산역에 도착,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광화문 인근 시청역으로 향했다. 시청역을 나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가벼운 인사를 건넨 이들은 촛불과 장갑, 핫팩, ‘대통령 하야’ 피켓을 나눠줬다. 한 순간에 집회 준비물이 마련됐다. 광화문 촛불집회 첫 참가자가 금새 ‘프로 촛불러’가 된 느낌었다.

공식 집회 시작은 오후 6시부터였다. 그런데 4~5시간 전에 벌써 광화문 광장 일대는 빼곡했다. 오전부터 시민들이 몰려든 것으로 보였다. 시민들께 “빨리 나오셨네요”라고 말하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1분이라도 더 빨리 내려오라고 말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오후 4시께 시민들과 함께 청와대로 향했다. 전날 법원이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 및 집회를 허용한 까닭에 앞선 집회때보다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부터 두 손 꼭잡은 노부부, 심지어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아저씨까지 50만명이 청와대 포위 행진을 시작했다. 광화문을 왼쪽으로 돌아서 청와대로 가는 대열에 합류해 걸었다. 30여분을 걷자 더이상 진출할 수 없는 경찰의 차벽이 등장했다. 청와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앞이었다. 행진을 막아선 경찰 뒤로 어렴풋이 청와대의 푸른 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시민들은 청와대가 눈에 띄자 호흡을 가다듬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청와대에서도 또렷이 들릴 힘찬 외침이었다.

◇170만 촛불의 장엄함=청와대를 에워쌓던 시민들은 오후 6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고자 발길을 돌렸다. 너무 많은 인파가 청와대로 향한 탓인지 일부는 계속 청와대 가까이에 있었다. 집회장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민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듯 일렬로 걸어가며 질서를 지켰다. 걸어가는 내내 쓰레기를 주어담는 시민들도 상당수였다. 왜 촛불집회가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해가 저물자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자리를 채워나간 시민들은 집회 한 시간여 만에 광화문에서부터 청계광장 인근까지를 촛불로 뒤덮었다. 도로가 난간에 올라 바라본 광화문광장은 장관이었다.끝이 보이지 않을 촛불이 이어지고 있었다. 촛불은 함성과 함께 계속 밀려왔다. 마치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를 연상케 했다. 170만명이 함께하는 그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뭉클했다.

감동은 오후 7시 ‘소등행사’때 절정에 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히라는 의미에서 7시 정각이 되자 광화문은 170만개의 촛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어둠은 시민들을 누르지 못했다. 시민들은 사회자의 구호에 맞춰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탄핵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등을 1분 동안 외치며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다시 촛불이 켜지자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오후 8시 2차 청와대 포위 행진이 시작됐다. 416개의 ‘횃불’을 든 세월호 유가족들이 선두에 나섰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불꺼진 청와대를 향해 다시 시민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7시간의 진실을 밝혀라”.

세월호 미수습자인 단원고 2학년1반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저는 지금도 4월16일에 살고 있다. 은화가 불렀을 마지막 이름이 ‘엄마’였을 것이다”라며 “세월호는 아직 바다 속에 있고 은화와 다른 미수습자들도 가족 품에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본 시민들도 유가족도 우리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감동의 ‘2만 보’=두 차례의 청와대 행진과 광주에서 서울까지 옮겨온 걸음 등으로 스마트폰 건강어플에는 2만1천306보가 기록됐다. 거리로는 16.1km. 늦은 밤 광주행 KTX 열차에 오르니 170만명과 함께했던 장면들이 하나 둘씩 스쳐갔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에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사상 최대 인파로 응답했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국민들 스스로 보여줬다. 2016년 12월 3일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쓴 장소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새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걸었던 2만1천306보나 16.1km와는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함이었다.
서울/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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