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 보기 싫은 남편

꼴 보기 싫은 남편

<문상화 광주대학교 국제언어문화학부 교수>
 

내 남편은 술주정뱅이이다. 눈을 씻고 보아도 잘 하는 것이라고는 술 마시는 것뿐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잠든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다른 남편들은 돈도 잘 벌고 가족들도 끔찍이 챙기는 것 같던데, 나는 무슨 복이 이렇게 지지리도 없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신세타령을 한다.

고주망태가 되어서 돌아온 날, 남편을 상대로 온갖 악을 써대고는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 내일 해가 뜨면 이혼을 하고 말리라. 그동안 참아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요, 서러움을 당한 게 이만 저만이 아니거늘,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저 웬수 같은 남편이 아니었으면 사모님 소리를 들어가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을 텐데, 내가 눈이 멀어서 저 웬수 같은 남자를 만나서 이 고생이지’ 싶다.

헤어지겠다고 작정하니 속이 후련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해두고 싶다. 우리가 이혼을 하더라도 애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는 말아야 한다. 부부야 헤어지만 그만이지만 부모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천륜이 아니던가. 내가 이 웬수와 헤어지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애들과 아버지를 원수지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의 탄핵정국은 이제 이혼선고를 눈앞에 둔 부부 같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후 법원이 서로의 삶을 따로 하게 할지, 혹은 같이 하게 할지 결정하겠지만 이미 한 사람은 마음이 떠난 상태이다. 마음이 떠난 사람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은 채 광장에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이다.

옳고 그름을 가려달라고 법원에 부탁을 했으면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맞지만, 그 시간도 참을 수 없다면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도 금도는 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와중에 상대방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말이 섞인다면 그 것은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박정희가 싫고 박정희의 딸이 싫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거나 저주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상대방을 조롱하고 저주한다면 나 자신도 조롱당하고 저주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목숨이 걸린 전쟁터에서도 적장에게는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뽑은 우리 대통령에게도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어야 한다. 헌재의 심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박근혜 체포조’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장례차를 준비하고, 함거를 끌고 다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혼 판결을 기다리는 부부는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침울한 얼굴을 해야 맞는 법이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환한 얼굴을 하는 것은 남들의 빈축을 사기에 딱 알맞은 일이다.

우리는 지금 미운 사람 대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현원(現怨))에 구원(舊怨)이 겹쳐져 조롱과 저주가 섞인 질책하고 있다. 거기에 가세해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선동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조롱과 저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쾌감뿐이고 양보와 예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뜻밖에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예절에 맞추어 대해야 우리의 행동에 품격이 생기는 법이고 그 것이 국격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에서 소중한 것을 배우게 되면 그 과실은 오롯이 우리 아이들의 것이 된다. 저주와 조롱이 없이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을 때 현 위기정국이 오히려 우리나라를 한층 성숙한 국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공들여 지켜온 나라이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살아갈 터전이다. 그 소중한 터전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부부가 원수지간이 되면 헤어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혼을 하더라도 멋있게 헤어져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어느 굽이진 골목에서 만났을 때 서로의 안부라도 물으면서 악수라도 청할 수 있지 않겠는가?(smoon@gwang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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