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7>-장계(狀啓)

새끼를 꼬면서 충신은 시구를 흥얼거렸다. 사또 어른이 늘 혼잣소리로 구슬프게 부르던 노래였다. 듣고 나름으로 새겨보니 뜻이 깊었다. 처음엔 몰랐으나 조각 맞추듯 하나하나 맞추다 보니 가슴 저린 사연이었다.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時花淺淚(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家書低萬金(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渾欲不勝?(혼욕불승잠)

“무슨 노래를 그리 맛나게 하느냐. 종일 나와보지도 않고…”

어머니 영천이씨가 밥하다 말고 부엌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 보더니 물었다.

“사또 어르신이 읊는 노래입니다. 자주 듣다 보니 따라 외게 됐지요.”

“듣기가 애잔하니 좋구나.”

“뜻이 있지요. 전쟁터에 끌려가서 평생을 보내는 늙은 군병의 이야기라고 하네요.”

“사또 어른이 지은 노래여?”

“아닙니다. 두보라는 시인이 지은 ‘춘망’이라는 시입니다.”

영천이씨가 흥미를 느끼고 바가지를 든 채 방으로 들어와 그의 곁에 앉았다.

어미도 늘 충신이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벅차곤 했다. 낭랑하게 글읽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마당에서 일을 보던 아비 정윤도 노랫소리에 이어 모자가 다정하게 나누는 대화가 궁금했던지 그 역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들었느니라. 우리말로는 무슨 뜻이냐.”

정윤은 글을 꽤 읽었지만 그에게는 어려운 문장이었다.

“우리말로도 좋은 가락이 됩니다. 그리고 이건 가슴으로 불러야 합니다. 너무도 절절하니까요.”

충신이 장단과 가락을 넣어서 읊기 시작했다.

나라는 깨졌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성안에 봄이 되니 초목이 무성하네

시대를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한 맺힌 이별에 나는 새도 놀라는구나

봉화불은 석 달이나 계속 오르고

집에서 온 편지 너무나 소중하여라

흰 머리를 긁으니 자꾸 떨어져

이제는 애를 써도 비녀도 못꼽겠네

영천이씨가 자랑스럽게 아들을 건너다 보았다. 내용은 모르지만 막힘없이 읊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아비 정윤이 물었다.

“우리의 전란을 말하는 것이냐.”

“시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누백 년 전 중국의 일이지만 이렇게 시공간을 떠나서 심금을 울리고, 만인에게 친한 것이 시입니다. 전쟁에 끌려간 백성의 비극은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지요. 이 시에는 지겨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기를 소망한다는 어느 군졸의 간절한 뜻이 담겨있지요.”

“우리가 난리를 겪고 있으니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구나. 내일 떠날 참이냐.”

“네. 망태기를 다 삼으면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영천이씨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나이로 먼 길을 떠나야 하다니,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길이 아닌가… 어머니는 아들을 아꼈으나 늘 마음 한켠이 빈 듯 아릿했다. 어려서부터 관아에 나가 일을 하면서 총명하고 야무지다는 말을 듣지만 남의 밥 얻어먹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아비 정윤이 생각하던 바를 말했다.

“군인이 되려고 길을 떠나는 것이냐.”

“네.”

이치전에서 그는 자신의 진로를 확인했다. 그러나 정윤은 생각이 달랐다. 장수라면 기골이 장대해야 하는데 체구로 보아서는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몸이 빈약하지 않느냐.”

정충신이 웃으며 답했다.

“몸으로 싸우는 군사도 있지만, 머리로 싸우는 군사도 있습니다.”

“9대조 할아버지가 그러셨다는구나.”

“네. 그래서 지(地) 장군 할아버지는 늘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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