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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베이비붐 상징 ‘58年’ 개띠들의 아름다운 퇴장

기사승인 2018.02.13  19: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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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상징 ‘58年’ 개띠들의 아름다운 퇴장

일선 현장서 물러나며 인생 이모작 준비 시기

유신·제5공화국·IMF 등 격변기 거친 세대


“지금은 100세 시대…다시 시작이라는 마음”

노금두·오순철씨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인 ‘58년 개띠’들이 올해 환갑을 맞이하며 사회 일선에서 물러난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이자 유신, 5공화국, IMF 등 사회격변기를 몸소 겪은 58년생들은 이제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준비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광주시종합건설본부장직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한 뒤 현재 남도학숙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오순철(뒷줄 가운데 모자쓴 사람)씨가 해남고등학교 3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한 행복했던 젊은날.

<편집자 주>대한민국의 인구팽창기, 1958년은 한 해 처음으로 신생아 90만명이 출생한 해다. 이 해 태어난 ‘58년 개띠’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이자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74년 일명 ‘뺑뺑이’로 불리는 고교 평준화가 시행돼 시험 없이 고등학교에 진학해 선배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으며, 유신정권의 몰락과 제5공화국의 탄생 등 사회 격변을 몸소 체험했다. 특히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던 39세 당시 1997년엔 IMF를 겪으며 갖은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이들은 초고속 경제성장과 세계경제 호황 속에 가장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린 세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렇듯 치열한 생애를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는 ‘58년 개띠’들이 올해 환갑을 맞이하며 사회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상 유래가 없는 청년취업난 속 은퇴를 앞둔 58년 개띠들은 이제 자식을 위해, 또 편안한 노후를 위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남도일보는 광주·전남지역 58년 개띠들을 만나 이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올연말 30여년간의 경찰 생활을 마무리하는 노금두 동부경찰서 지원파출소장.

◇노금두 동부경찰서 지원파출소장=1958년 광주 동구 계림동에서 태어나 일평생 대부분을 광주에서 보냈어요. 지금은 여든 다섯 드신 노모를 모시고 아내와 저까지 세가족이 중흥동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첫째 딸은 독일에서 유학중이고 둘째 딸은 군산에서 직장생활을, 막내 아들은 지금 군 복무중이다 보니 집이 썰렁하다 못해 적막해요. 그나마 반려견 ‘꼬맹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줍니다.
 

광주공고 2학년 시절 노금두 소장.

돌이켜보면 순경으로 임관한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1년이 지났습니다. 올 연말 퇴직인데 참 세월이 어떻게 갔나 싶기도 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어요.

전 처음부터 경찰이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공업고등학교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고 불리면서 참 잘 나갔죠. 저도 기술을 배워 출세해야겠다 싶어 시험을 치르고 광주공고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섬유산업이 유망직종이어서 방직을 전공으로 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나니 공고가 찬밥이 되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졸업후 조금 방황을 하다가 해군 부사관으로 군대에 입대했죠.

1980년 전남함이라는 호위구축함에서 근무할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는데, 뉴스에선 광주에서 북한군이 남침을 했느니 어쨌느니 그런 말 뿐이었죠. 그땐 전라도 출신 군인들의 외출·외박도 금지됐어요. 저도 당연히 광주의 실상을 알 수 없었죠. 근데 최근에 5·18 군 헬기 사격 등이 진실로 밝혀지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그때가 정말 엄혹한 시대였구나,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걸 새삼 느낍니다.

1987년 순경으로 임관했는데 이번엔 6월 항쟁이 일어났어요. 경찰교육생 신분으로 영등포에 차출돼서 시위 진압에 나섰죠. 그땐 단순히 위에서 시켜서 했는데 지금은 정말 잘못됐었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부인이랑 영화 ‘1987’도 봤어요. 많이 씁쓸하더라구요.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경찰로서. 아마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저처럼 많은 분들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을 거에요.
 

1988년 순경 시절 첫 근무지인 경기 안성경찰서 미양지서 근무 당시 노금두 소장.

과거와 지금, 경찰을 비교하면 정말 많이 변했어요. 옛날엔 장비부터 근무체계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된게 없었죠. 예전엔 순찰을 돌고 와서 순찰함에 수기로 사인을 해야 했어요. 그만큼 수동적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율순찰제잖아요. 주민들의 수요에 맞춰 움직이고. 또 예전엔 전일제 근무라고 해서 1주일에 비번이 한 번이었는데, 지금은 3교대로 하다 보니 훨씬 사정이 나아졌어요. 특히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무영 경찰청장이 취임하고 ‘핏발 선 경찰들의 눈을 씻겨주자’고 해서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이 이뤄졌는데, 이때 근무환경이 대폭 좋아졌죠.

은퇴 이후에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감독하고, 채점하는 운전면허감정원을 해볼까 생각중이에요. 돈도 돈이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잖아요. 이제 큰 바램은 없어요 자식들이 좋은 짝 만나고,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 곁에 계시길 바랄 뿐이죠. 또 미리 노후준비를 많이 해놓지 못해 아쉽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그래도 은퇴후엔 시간이 많이 있으니 와이프랑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해요. 올 여름엔 독일에 있는 첫째 딸도 볼겸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경찰 생활을 하며 해외 나간다는게 쉽지 만은 않았는데, 은퇴하면 얽매일게 없으니 기회가 되는대로 나가야죠.

은퇴를 앞둔 58년생들 우리 친구들에겐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여곡절이 참 많았잖아요. 아무튼 100세 시대에 저를 비롯한 58년 개띠들의 남은 인생 건승을 기원합니다.
 

지난해 광주시 종합건설본부장직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한 오순철씨. 현재 오씨는 남도학숙 사무처장으로 서울에서 공부하는 고향 후배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오순철 남도학숙 사무처장=전 1977년 9급 공무원으로 해남군 황산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어요. 서남해랑 인접한 해남읍 내사리가 제 고향인데 읍에서도 8㎞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당시엔 전기도 안들어오는 오지 중에 오지였죠. 버스도 안 다녀서 매일 8㎞ 거리를 걸어서 학교 다니고 그랬어요.

2남 4녀에 넷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릴적 집이 무척이나 가난했어요. 끼니도 거를 정도로. 그땐 다들 그런 시절이었거든요. ‘보릿고개’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공무원에 지원했어요. 그 당시 제 월급이 4만원이었는데, 하숙비도 한 달에 4만원이었어요. 일을 해도 밥먹기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시절이었죠.


초짜 공무원 시절엔 퇴비증설, 지붕개량 이런게 주업무였어요. 박정희 정권에서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니까. 가로정비라고 쓰레기 치우러 다니는 일도 많았죠.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공직사회는 많이 좋아진거 같아요. 옛날엔 상사가 퇴근 안하고 있으면 우리도 퇴근 못하는 시절이었고, 지금은 상사가 저녁 사준다고 해도 잘 안가는 시대잖아요. 과거에 직장에만 매달렸다면, 요새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중요해졌죠. 그게 또 옳은 방향인 것 같고.

저 같은 경우엔 사무관 시절, 한창 일할때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어요. 일에 파묻혀서 효도를 못한게 아직도 가슴 아프죠. 가족들한테도 미안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특히 세딸이 어렸을 때 얼굴도 잘 못 봤어요. 와이프가 애들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죠.

가족들의 희생이 컸지만 공직생활중 보람도 많았어요. 2006년에 광주시의 전반적인 기획업무를 맡았는데, 당시 광주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정상회의가 열렸어요. 광주에서 열린 최초의 국제행사였죠. 고르바초프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6명이 광주를 방문했는데, 그때 국제행사를 잘 치렀다고 청와대 등 여기저기서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전 근정포장 훈장도 받았죠. 숱하게 밤 지새우며 일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물론 부침도 많았어요. 문화관광과장 재직 당시 갬코(GAMCO) 사건이라던지.

공직생활중엔 경쟁도 엄청 치열했어요. 우리 58년 개띠 친구들 중에 쟁쟁한 친구들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만큼 승진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죠.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승진에 목매달았나 싶고 그러죠. 경쟁 때문에 친구들하고 관계가 서먹해진 적도 있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다 부질 없는 일이었던것 같아요.

전 작년 6월에 정년 1년 반을 남기고 명예퇴직 했어요. 남은 인생은 후배들을 위해 보람찬 일을 해봐야겠다 해서 남도학숙 사무처장 공모에 지원했죠. 임기가 내년 8월까지인데 지금은 제2의 인생을 덤으로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있죠. 자연스레 주말부부로 지내는데, 그래도 주말엔 여유가 있으니 와이프랑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또 요샌 작년부터 명예퇴직이나 공로연수에 들어간 광주시청 58년 동갑내기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로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해요. 대화 주제는 역시 ‘건강’이 대세죠. 우리가 이제 삶의 현장에서 뒤안길로 물러나는 시점이잖아요. 이젠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더라구요. 친구들이 모두 건강관리 잘하면서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58년생들은 위에 챙기랴 아래 눈치보랴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서 본인을 많이 희생했을거에요. 이제는 자기개발이라든가 취미 활동이라든가 자신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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