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 장군<115>-제7장 비겁한 군주

어전이라고 해야 누추한 농막같은 곳이니 왕의 체면도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라도 승전보를 듣는 것은 눈에서 번쩍 안광이 빛날 일이었다.

“이치전 승전보는 밤새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이로다. 이겼다는 이야기가 이처럼 신기하고 신통방통한 것이 없구나.”

당쟁으로부터는 초연한 이항복도 모처럼 상감마마가 밝은 표정이 되니 자신도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는 상황이 그렇더라도 성상이 늘 웃음과 함께 지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주상 전하, 어전회의를 소집해 놓았는데 파회하실까요?”

“당연하지.”

이항복은 병조판서 임명을 받아놓고 있었지만, 비상정국의 도승지 역할에 더 충실했다. 왕이 다시 말했다.

“하나마나한 회의 열어서 뭘하게. 과인이 요즘 마음이 심란해서 총기가 흐려졌다만, 저 당찬 소년의 용맹함에 힘이 솟는다. 승전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도다. 그 얘기로 대신하라.”

“다시 말씀 드리라고요?”

정충신이 물었다. 같은 말도 되풀이하면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도 맥빠지는 일이다.

“어서 하거라. 보태지 말고 말씀 올리렸다.”

이항복이 부추겼다. 성상이 이렇게 유쾌하고 기분 좋은 때가 없었으니, 그 시간을 좀더 연장해보고 싶은 것이 명신의 뜻이었다. 그는 정충신이 왕의 신경안정제라고 생각했다.

“그럼 다시 말씀 올리겠나이다.”

“재미나게 하거라. 기승전결이 바뀌어도 재미나면 더 재미있나니라.”

정충신은 다시 시작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제6군단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전주성을 함락시키라고 명령했다. 한양 턱밑까지 진격했던 고바야카와 군대는 명을 받고 남하해 북상하는 왜의 별군 안코쿠지 에케이 군단과 합류하여 영동-무주를 휩쓸더니 임진년 6월23일 금산에 제6군 본영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자신 직할군 2천의 병력을 이끌고 이치령 북쪽인 진산성에 들어갔다.

이때 여타 왜군 적장들의 팔도 진격 배치 상황은 다음과 같다.

한양·경기 제8군 사령관 겸 총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

충청도 제5군사령관 후쿠시마 마사노리

전라도 제6군사령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경상도 제7군사령관 모리 데루코토

황해도 제3군사령관 구로다 나가마사

강원도 제4군사령관 모리 가쓰노부

평안도 제1군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

함경도 제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가또, 구로다가 이끄는 왜의 주력은 벌써 동래포와 부산포-밀양-상주-추풍령-원주-용인-여주 방향으로 진격하면서 제1,2,3침투로를 확보했다. 이들 부대는 충주에서 버티고 있는 신립이 이끄는 부대를 궤멸시키고, 용인에서 삼도근왕사 5만명을 편성해 저항하는 이광의 조선군을 패퇴시켰다. 왜의 후발군 병력은 또다른 북상 진격로인 제4 침투로를 뚫고 저항없이 한양-개성으로 진격했다. 허망할 정도로 거칠 것없는 북상이었다. 장수들 모두 조선침탈에 눈에 쌍불을 켜고 있었다. 그들은 왕을 사로잡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보였다.

임진년 7월 8~10일(음력) 사이 고바야카와는 합동작전으로 전주 진격작전을 개시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