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를 ‘찍어낸’ 목판화의 색다른 매력
조진호 작가 ‘觀-세상을 바라보다’ 전
무각사로터스갤리서 내년 2월까지 개최
판화·회화 등 77점 전시…10m 대작도

조진호 작 ‘관6’, 목판화.
조진호 화가
조진호 작 ‘관4’, 천위에 혼합재료.

신라 덕흥왕 2년 전남 영암군 월출산 아래에서 태어난 승려 도선(827~898)은 우리 풍수사상의 대가이자 우리가 지금 보는 많은 사찰의 창건자다. 전국을 다녀 보면 사찰을 많이 세운 승려는 대개 도선, 자장율사, 의상대사의 순(順)이다. 우리나라 사찰을 만든 스님들의 순위에 따르면 도선은 모두 79개 사찰을 창건했고 17개 사찰을 중창했다고 한다. 도선이 지은 절에는 하나같이 기이한 전설들이 따라다니는데 그중 백미는 전남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단 하룻밤 사이에 세웠다는 것이다. 이 천불천탑에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다.

이 때문인지 운주사를 세상에서 가장 절로 꼽는 사람이 많다. 다른 절보다 웅장하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열망을 담은, 새 세상을 꿈꾸는 간절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운주사는 화가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마침 고희(70세)를 앞두고 운주사에서 ‘새 출발’을 다짐했다는 작가의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끈다. 광주 로터스갤러리(무각사)에서 열리고 있는 조진호 작가의 ‘관(觀)-세상을 바로보다’ 전이다. 최근 개막식을 가진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조 작가는 이번 전시에 운주사 천불천탑을 소재로 한 작품과 평소 즐겨 해석하던 인물상을 판화 60점에 담았다. 또 해바라기를 주제로 우리의 삶과 생명을 묘사한 회화 17점도 선보이고 있다. 조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2008년 광주 신세계갤러리 개인전 이후 10년만의 개인전이다. 지난 6월까지 4년간 광주시립미술관장을 역임하는 등 작품 활동에 한 발 비켜 있었던 그는 늘 다짐하던 70세 이전에 큰 작품전으로 대작전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물들이다. 실제 이번 전시에는 10m 작품 2점과 5m 1점, 120호 1점 등 대작들을 걸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 스스로 “올해 1월 눈오는 날 운주사에서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작가가 세상을 향해 지니는 마음가짐을 제안하고 있다. 이름없는 석공이 천불천탑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뤘듯이, 그의 작품에 흑과 백으로 드러나 빛과 그림자로 다가오는 목판화의 형상들은 우리가 한동안 잃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기억하게 한다.

작품에서 보이는 석불과 석탑 그리고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진 소박한 풍경은 한편으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기억 이전 무상(무상)의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투박하고, 거칠게 표현된 작품들은 허위와 가식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오랜기간 민중미술가로서 벼르던 ‘삶의 칼’이 오롯히 작품에 새겨져 있다.

전시가 열리는 무각사 로터스갤러는 평소 지역에서 성실한 작업과 숭고한 작가의식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어가는 조 작가에 주목, 전시공간을 확장한 뒤 첫 전시회로 조 작가를 초대전을 마련했다. 조 작가는 “멀리가 아닌 내 주변에서 소통되고 있는 부분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 주제도 관(觀)으로 정했다”면서 “우연한 기회에 눈 오는 날 방문한 운주사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을 토대로 작가로서 새 출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광양 출신인 조 작가는 조선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잡풀베기 판화전을 시작으로 이번까지 16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광주시립미술관장과 광주비엔날레 이사, 광주미술협회 상임부회장,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대표 등을 역임했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