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296>

누르하치가 이어 말했다.

“군마를 구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말이 없었다면 칭기스칸이나 조자룡 같은 위인이 나올 수 없었겠지. 하지만 우리 말을 가져가되 꼭 비밀에 붙여야 한다. 무슨 뜻인 줄 알겠느냐?”

“알고 있습니다.”

누르하치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을 낮출 때 낮추고, 숨길 때 숨기고, 힘겨울 때 피해가는 조심성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아직은 명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주변국을 의식해야 한다. 힘이 커질 때까지는 철저히 낮은 자세로 상대방이 안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군마를 200마리 지원한다고 해도 기밀에 붙여야 하는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 교창가(覺昌安)와 아버지 타쿠시(塔克世)가 무모하게 대항했다가 같은 날 똑같이 명군에게 칼맞아 죽고, 어린 그는 포로가 되었다. 패배는 단순히 장수의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몰락하고, 종족이 멸해질 수 있다.

누르하치는 자라는 동안 한을 숨기고 온갖 고난을 이겨내면서 가슴 속 깊이 복수의 칼을 갈았다. 대업을 이루기까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지 35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기다리며 준비한 끝에 마침내 대업을 이루었다.

“자, 젊은 조선 손님이 왔으니 대접을 해야지.”

누르하치는 별채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마련했다. 정충신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연령의 차이나 신분의 나뉨이 없이 그는 모두에게 편안하게 대했다. 둘러앉은 막료들과 맨손으로 멧돼지 고기를 뜯고, 북방의 독한 화주(火酒)를 사발째 마시며 왁자하게 떠들었다. 누구나없이 시커먼 얼굴에 뗏국 흐르는 짐승 가죽옷을 걸친 품이 꼭 산적들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한인(漢人)들은 야만인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누르하치는 정충신에게 고향 얘기며, 군인이 된 내력, 부모의 하는 일을 물었다. 그럴 때는 꼭 집안의 삼촌 같았다. 화주가 대여섯 순배 돌자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고, 만인 특유의 괴성과 거친 동작들이 횃불 밑에 일렁였다. 누르하치가 정충신을 이윽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조선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조선은 그게 아니더군. 따따부따 재고 따지기를 좋아하더군. 좋으면 좋은 것이지, 좋은 색깔이 무엇이며, 왜 하필이면 그 색깔인가, 그 색깔은 이래서 안되고, 또 저래서 문제가 있다고 따진다. 지겨울 정도다. 그렇게 따져서 어쩌겠다는 건데? 나를 의심하고 따지기를 좋아해. 젊은 그대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위대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대하다는 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다.”

“세계사적 흐름을 아신 분입니다.”

“그래? 그런데 너는 알지만 조선은 모른단 말이다. 흐름을 모를 뿐만 아니라, 누르하치의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만족(蠻族)이라는 선입감으로 편견부터 갖는단 말이다. 무식하고 무지하고 짐승같이 산다고... 그건 명국이 만들어놓은 모략일 뿐이다.”

그러면서 조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조선의 사대부는 공자맹자 몇 줄 외운 것으로 도포자락 휘날리며 권세 잡고 떵떵거리더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임진왜란을 겪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치를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암호문자 같은 문자 몇 개 아는 것으로 지배력을 행사해. 공리공담에 무능이 몸에 배었어. 지네들이 잘못 저질러놓고 백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무책임한 자들이야. 우리 여진족을 한낱 오랑캐라고 벌레 취급해. 여진이 천조(天朝:명나라)를 갈아엎고 중원의 주인이 되어가는 현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어. 그러면서 망해가는 명을 대신한다고 소중화(小中華)를 부르짖어? 정작 명이 지향하는 유연한 성리학과도 충돌하면서 말이다. 경직되고 굳고 빡빡한 신념의 독단에 빠져있을 뿐, 타협이란 게 없어. 나도 글깨나 익혀서 알지만, 학문이라는 것은 본래 유연성의 성질을 갖고 있지. 세상 만물은 불변의 원칙이 깨지는 것이 원칙이야. 수정되고 보완되어 완결되어가는 것이야. 그런데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고걸 자기 불알 붙잡듯이 붙들고 있어. 지배층만이 아는 암호문자 같은 것을 씨부리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선민의식에 젖어있단 말이야.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와 세계관이 도대체 뭔가. 왕과 대비가 죽었을 때 상복을 몇 년간 입을지를 놓고 두 패로 나뉘어서 피를 부르는 ‘예송 논쟁’이 성리학의 본질인가? 남녀 균분 상속이나 여성의 재혼을 제한하고, 여인이 불한당에게 억울하게 겁간을 당해도 정조 운운하며 여자를 나무라는 것이 성리학인가? 상놈은 영원히 상놈이되 돈을 주면 면천해주는 것이 성리학의 질서인가? 이것을 주로 노론이 주창하는데, 노론 또한 둘로, 셋으로, 다섯으로 쪼개져서 나라를 분탕질하고 있어. 백성들은 다 죽어가는데 신주단지 모시듯 자왈(子曰) 어쩌면서 노는 꼴 보면 묘한 생각이 다 들더군. 내 미리 경고하지만 그러다 큰 코 다친다.“

정충신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거침없는 말이 놀랍기도 하려니와 어울리지 않게 높은 지식을 갖추고, 조선의 사정을 물속 들여다보듯 꿰고 있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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